당그니의 일본표류기



간 나오토 총리가 지난 10일 100년전 이루어진 강제병합에 대해 사죄를 했습니다. 이번 사죄는 기존에 되풀이된 과거 정부의 사죄와 다릅니다.

일본이 전후 처음으로 95년에 정부차원에서 내놓은 무라야마 담화는 아시아의 여러나라를 대상으로 한 사죄였으며, 고이즈미 총리도 대략 무라야마 총리의 담화를 수습하는 선에 전후 60년을 마무리합니다.

이 두 담화는 왜 한국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았을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무라야마 총리가 사회당 출신이긴 해도 일본의 보수우익을 대변하는 자민당과 연립을 통해 탄생한 정권이기 때문입니다. (이후 사회당은 맛이 갑니다...)

무라야마 담화는 자민당 의원들의 반발로 애당초 문안에서 계속 후퇴해서 '대수(대충 수습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맙니다.

고이즈미는 더 골때린 인간 중 하나죠. 말로는 무라야마 담화를 답습한다며 과거의 행위에 대해 사과한다고 말 해놓고서도, 본인은 기습적으로 8월 15일 전후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합니다. 무슨 '도인'도 아니고 말과 행동이 따로이면서 정신이 분열되지 않는 신기한 인간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하나 있죠.

"나는 수상이지만 개인자격으로 참배했다!"

일본의 8월은 좀 살다보면 황당합니다.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평화기원 때문입니다.

우선 8월이 되면 가장 먼저 원자폭탄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피해 기념식이 열립니다. 그리고 평화를 기원합니다. 두 번 다시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면 안된다고. 이렇게 평화를 순수하게 기원하는 것 자체를 뭐라고 비난할 것은 못됩니다.

문제는 단순히 '평화'만 기원한다는 것입니다. 8월을 맞이해 일본이 일으킨 가해의 역사에 대해서 언급하는 방송은 거의 없습니다. 역사시간에 배우지도 않습니다. 당연히 일본의 젊은이들은 일본제국주의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모릅니다. -_-;

그러니 평화를 기원하되 가해자도 피해자도 불분명한 기원이 됩니다. 토착종교와 불교가 뒤섞인 일본 신사와 절을 보는 것 같습니다. 드래곤볼처럼 싸우던 적도 어느새부터인가 동지가 되어 또다른 적에 맞서 싸워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적도 아도 없는 오로지 평화. 이런 평화기원은 그저 철모르는 소년들의 '세계평화' 기원과 얼마나 다른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러다가 8월 15일 종전기념일을 맞이합니다. 이 종전기념일도 그냥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기념할 뿐, 승자도 패자도 없습니다. 예전에는 자민당 출신 각료들만이 야스쿠니 신사를 다녀오면서 주변국의 속을 긁어놓기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일본젊은이들은 왜 주변국 사람들이 반발하는지도 모르고, 그냥 저쪽에서 반발하니까 같이 반발합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올해 간 총리 내각에서는 각료 전원이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간 나오토 총리의 이번 담화는 일본 내에서 보면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사죄 대상을 '한국'이라고 한정 지었고, 한국민의 뜻에 반해서 식민통치를 했다는 강제성을 넣음으로써 그동안 자민당이 극렬하게 반대했던 '가해'의 역사를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은 작년 9월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되면서 자민당 보다 진보적인 정권이 타 정당과 연립에 기대지 않고 단독으로 내각을 운영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라는 해도 영향을 미쳤겠지만요. 만약 자민당이 정권을 잡고 있었더라면 이런 담화가 나왔을까요.

간 총리는 시민운동가 출신으로 민주당 내에서도 진보적으로 평가받는 인물이고, 수상의 비서실장이라 할 수 있는 관방장관인 센고쿠 씨는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이번 담화를 강력하게 밀어붙인 사람 중 한 사람입니다.

센고쿠 장관은 "(그나마 역사를 아는) 우리 세대에서 과거 청산 문제를 끝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심정으로 직접 문구를 손질을 보면서 조율을 했습니다. 그리고 성의를 보여주는 것으로 '조선왕조의궤'를 반환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물론 표현은 '반환'이라는 것을 쓰지 않았습니다. '반환'이라고 쓰는 순간 일제시대에 한국에서 가져간 모든 물건을 되돌려줘야하는 의무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그냥 넘겨주겠다는 표현을 썼지만 어쨋거나 그 전 정권에 비해 진일보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민 입장에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종군위안부 문제, 근로정신대 문제, 수없이 약탈된 문화재, 한일강제병합이 갖는 불법성 인정 등 가장 민감한 것들은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한국과의 과거청산에 대해 갖는 큰 틀은 65년 한일청구권 협상 때 개인 보상은 물론이고 문화재 반환도 모두 끝났다고 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이 기본 틀은 일본에 아무리 진보적인 내각이 들어선다고 해서 바뀌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틀을 무시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내놓는 순간 내각이 붕괴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죠.

지금도 자민당 등 보수층에서는 조선왕조의궤 반환에 대해 의회에서 제동을 걸겠다고 으르렁대고 있고, 산케이에서는 자학담화라고 강하게 비난하고 있습니다.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는 어떻게 보면 현재 일본의 정치지형 속에서 최선을 다해 내놓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현 일본정부가 처한 상황이 그러하니 이해해주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 일본정부가 가까스로 내놓은 담화의 수준은 너무나도 오랜 시간 자민당이 집권해오는 동안,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배운 적도 없어 무감각한 일본인들과 65년 한국이 맺어버린 한일기본조약, 그리고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정당화하는 보수권력이라는 지형 속에서 그나마 타협점을 찾아 만들어진 합작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흘린 눈물이 진실일지라도, 큰 틀에서 보면 일본인들의 내놓을 수 있는 선물은 이 정도가 한계가 아닐까 합니다.  단순히 정부 하나가 새로 바뀐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나, 어렵게 나온 간 총리의 진심어린 담화를 빛바래게 하는 것은 이런 기형적인 조건 뿐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민당을 포함한 보수세력의 끊임없는 흠집내기가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베 전 총리는 이번 담화가 "훗날 보상을 위한 도화선이 된다. 화근을 남겼다"며 악담을 쏟아냈고, 자민당의 다니가키 총재는 민주당 너네가 야스쿠니에 참배하지 않는다면 나라도 하겠다고 8.15참배를 공언했습니다. 그들은 모르는 것일까요.

'이왕 줄 거면 잔소리하고 주느니, 기분 좋게 줘야한다는 것을.'

국제관계도 커다란 틀에서 보면 인간관계라고 할 때, 이런 기본도 모르는 이들이 일본의 우익이라니...한심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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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일본한자! 현지회화, 스터디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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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은 최근 이슈는?/정치 l 2010/08/12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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