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언제부터인지 기억은 안나지만, 나는 꽤 산행을 좋아했다. 사람들은 그런다. 어차피 내려올 거 왜 올라가느냐고. 이런 질문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라든가,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등의 철학적인 답을 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내게 왜 산을 좋아하냐고 물어오면, "산을 오르는 순간 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등산에만 집중할 수 있는 단순함 때문"이라고 답한다. 사실 일상사 만큼 번잡한 것이 또 있나. 회사일, 집안일, 미래, 집 걱정, 이 걱정 저 걱정...등등.

그런데 산에 오르는 시간 만큼은 이런 잡 생각이 사라진다. 그리고 오로지 정상에 가는 것만 생각하게 되니까, 집중하는 만큼 정신이 맑아진다고 해야할까. 산 위에 올라가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맛도 근사하다. 무엇보다 산 위에 올라갔을 때 불어오는 바람의 상쾌함도 좋아했다. 지리산에 올라갔을 때는 산맥을 타고 기어오르는 구름, 운해가 장관이었다. 당시 선배의 영향 때문인지 첫 습작 소설도 지리산행을 배경으로 쓰기도 했다. 산 속 깊은 곳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청할 때면 왠지 새로운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한국에서 일본어 학원을 다닐 때도 취미가 뭐냐고 일본인 강사가 물어봤을 때 '등산'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때 일본인 강사가 약간은 신기하다듯이 쳐다본 기억이 있다. 서울은 산에 둘러싸여 있어서 우리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지만, 외국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대충 생각하고 있었다.

도쿄에 와서 살아보니 단 한 번도 산에 오르지 못했다. 산을 가지 않은 이유는 딱 하나다. 도쿄는 대부분 평지이고, 산을 가려면 한참이나 멀리 가야하기 때문이다. 도심인 신주쿠에서 가장 가까운 산은 타카오산인데, 전철로 한 시간은 가야한다. 산을 어지간하게 좋아하지 않는 이상 가기 어렵고, 도쿄에는 집 근처에 공원이 많아서 굳이 산까지 놀러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일본에 처음 왔던 10년전 교토는 분지라서 산에 쉽게 오를 수 있었고, 교토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는데, 도쿄에서는 가장 가까운 산이라는 타카오산을 갈 기회가 좀처럼 없었다. 그런데 어제 드디어 처음으로 타카오산을 다녀왔다.

타카오산을 다녀오고 나니 가벼운 산행으로는 서울이 훨씬 좋은 지리적 입지를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하게 됐다.

타카오산은 정상이 해발 599미터로 북한산 백운대 836미터 보다 낮다. 무엇보다 산 중턱까지 리프트 및 케이블카로 연결되어 있고, 제 1코스로 걸어 올라 갈 경우 중턱까지는 신작로처럼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있어서 흙과 바위를 밟고 오르는 산행과는 거리가 멀다. 중턱부터정상까지는 또 각종 신사와 절을 통과하게 되어 있어서 한적함과는 상관 없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사거나 먹는 장소를 봐야한다. 너무나 완벽하게 산 전체가 신사화(神社化)되어 있어 인공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었다.

가장 압권은 산 정상. 정상에 올라도 도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제대로 된 경치를 느끼기 어려운데다가, 아이스크림부터 맥주까지 안파는 것이 없어서 등산을 온건지 동네 공원을 온 건지 구분이 잘 안갔다. 골든위크라 사람이 많은 것도 한 몫했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주말에 가볍게 연인과 산을 오르기에는 서울 산 만한 곳이 없을 것 같다. 관악산, 북한산, 남한산성, 청계산, 우면산, 그리고 남산.

남산을 제외하고 흙을 밟고 오르면 개울이 따라오고...바위를 보면서 경치를 즐길 수 있고. 산 입구가 많이 개발되어 있긴 하지만 내려오는 길에 막걸리 한 잔 걸칠 수도 있고.

서울을 둘러 싼 산 만큼 산과 나무와 물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면서 도시에서 접근하기 쉬운 곳이 없는 것 같다.

- 사진으로 보는 타카오산

- 게이오선을 타려고 하니, 벽에 아이리스 방송 광고가 붙어 있어서 찰칵


- 타카오산입구역에서 내리면 역 앞에 산행 코스를 볼 수 있다.


친절하게도시리 한국어로 다 적혀있다.
의외로 한국사람도 많이 왔다.


등산인가, 언덕길 오르기인가;;


산 중턱에서 본 도쿄쪽.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거대한 신사를 온 듯한


산 중턱에도 신사와 절이 결합되서 염주부터 각종 부적을 팔고 있다.


드디어 정상, 입구에서 올라오는데 소요시간은 100분. 그런데 여기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는데 40분 걸렸음;




정상에서 찍은 풍경. 이 이상의 절경(?)을 기대하기 힘들다.


산 중턱에서 입구까지 리프트를 타고 내려갔는데...유일하게 재미있었던 것 중 하나. 다만 사람이 많아서, 기다리는데 또 하세월.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현지회화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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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 이것이 다르다! l 2010/05/05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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