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주간 도쿄에는 끝없이 비가 내린다.
오늘도 밖은 빗방울 소리.
비가 너무 자주 오면 우울해지기 쉽상이지만, 꽃가루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내게 비는 구세주와 다름 없다.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으니까. 비가 와서 연애라던가, 추억이라던가 이런 감상을 즐긴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반가워하는 것을 보면 일본말로 나도 오야지(아저씨)가 다 되었구나 싶다.
2007년, 내가 일본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잠시 혼자살려고 둥지를 틀었던 이 집도 이번주 금요일이면 떠난다. 이곳은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가까운 곳인데, 딸아이가 동경한국인학교(초등부)에 가는 사람에 신주쿠로 이사하게 되었다. 지금 집은 짐을 싸느라 박스로 둘러쌓인 거대한 창고가 된 느낌이다.
일본에 살면서 느끼는 거지만, 일본사람들은 좁은 집에서도 참 잘 적응하면서 산다. 지난 1년 3개월 남짓 살았던 이 집은 사실 나 혼자 살려고 구했던 집이다. 방이 두개지만 마루가 거의 없어 신혼부부라면 모를까 아이를 둔 집으로서는 부격적하다. 그런데도 딸아이와 아내가 한국에서 작년 6월 건너와서 잘도 살았다. 게다가 토끼집까지 두고 좁게 살았는데, 같은 크기의 옆집을 보니 4인가족이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좁으면 좁은대로 사는 게 일본사람들이다. 일본인들에게 왜 집이 이렇게 좁아터졌냐는 무의미한 질문이다. 그냥 집이 이러니까 거기에 적응해서 살면 된다이다. 물론 능력이 되면 점점 집을 넓혀가는 것이 상식이지만, 자기 능력에 맞게 좁으면 좁은대로 군말없이 잘 산다. 그러니까 일본인들은 무언가를 짜맞추고, 무언가를 조립하고 무언가에 맞춰서 자신을 변형하는 법을 잘 알고 있는 민족이기도 하다. 그것이 기계가 되었던, 전자회로가 되었든, 칼이 되었든.
일본야구를 보면서도 느끼는 것은 그거다. 사무라이 재팬. 일본인들에게 도덕적이고 모범적인 모델은 '사무라이'다. 오로지 이기고 강한 것이 미덕이다. 그런 의미에서 승리와 패배를 가장 극적으로 극명하게 드러내는 스포츠는야말로 일본인들이 신성시하는 사무라이와 닮았다. 격투기라든가 야구에 흥분하는 이유가 분명히 거기 존재하지 않은가.
집이 왜 좁아야하는가 하는 존재론적인 질문은 필요 없다. 집이 거기 있으니까 맞춰서 사는 것이고, 상대가 거기에 있으니까 우리는 이겨야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부득이하게 3월 중순부터 도쿄 도심 한복판에 살게 되었다. 그곳에 살면서 나는 또 얼마나 변할지 모른다. 스스로가 이렇게 변해야지 하는 것만큼 바보같은 강박관념이 또 있을까. 그저 좋으면 하고 싫으면 말면 되는 거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면 된다.
단 한가지 좋은 점은 있다. 한국사람들과 주로 만나는 곳이 그쪽이라 막차 걱정 안하고 술 마실 수 있다는 거 -_-;; 자건거도 한대 더 구비해놓으면 좋겠지.
3월 중순...나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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