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시민단체가 독도 성명 발표
독도 문제에 관해 일본에서 유일하게 한 시민단체가 규탄성명을 냈다.
2005년 시네마현 의회가결 때 발표한 후 이번이 두번째다.
얼마전 블로거뉴스에
독도 도발 규탄한 일본인과의 인터뷰
라는 내용으로 소개된 그 단체다.
아래는 그 내용이며, 이 성명을 발표한 시민단체 AWC(아시아 공동연락회의-Asian Wide Campaign)에 일본인친구가 있는 나로서는 이번 성명의 한국어 번역을 도왔다.
일단 이번 성명 내용을 함께 읽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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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부과학성이 중학교 신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기재한 독도에 관한 기재를 규탄하며, 철회를 요구하는 성명
7월 14일에 문부과학성은 2012년도로부터 완전히 실시되는 중학교 신학습 지도요령 해설서를 공표했다. 문부성은 그 안에 독도(일본명 다케시마)의 영유문제를 다음과 같이 다뤘다.
[또한, 우리나라와 한국 간의 독도(상동)을 둘러싸고 주장이 다른 것 등도 다뤄, 북방영토와 같이 우리나라 영토,영역에 대해서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이것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로,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라고 하는 독도에 관한 일본정부의 공식견해를 아이들에게 심어주려고 하는 책동이다. 2005년 3월에 시마네현 의회가 저지른 [다케시마의 날] 조례에 잇는 민족배타주의 선동 그 자체다. 또한 [-등]이라고 한 부분은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의 영유를 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일본은 약 100년전까지는 역사적으로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라고 인식하지 않았다. 에도막부도 메이지정부도, 독도는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러일전쟁 와중에 메이지정보가 독도의 군사적 거점으로서 유용성에 주목해, 조선식민지지배의 실질적인 첫해인 1905년에 제 멋대로 자국 영토라고 정하고 빼앗아간 것이다. 약탈한 것이다. 훔친 것이다. 도둑이다. 제국주의적 범죄행위 그 자체다. 자신들의 토지를 빼앗긴 한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민중이 독도문제에 관해 일본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당연하다. 제국주의적 확장주의를 바탕으로 빼앗아간 것은 사죄와 함께 반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우리들은 3년 전 2005년 3월 16일, 시마네현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다케시마의 날] 조례가 제정되었을 때도 항의하여 [독도 = 타케시마 문제에 관한 성명]을 냈다. 독도에 관한 역사적 경과에 관한 부분을 아래 인용한다.
(1) 역사적으로 조선 땅인 독도
에도 막부는 독도를 ‘마츠시마’로 부르고 ‘다케시마’로 불린 울릉도와 함께 두 섬을 일본인의 도항과 거주가 금지된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막부의 관선지도에 독도를 기재되지 않았다.
메이지 정부도 1905년 편입까지는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1869년 조사를 위해 조선에 파견된 외무성 관료는 그 다음 해 제출한 보고서 ‘조선국교제시말탐서(朝鮮國交際始末探書)’에 타케시마(울릉도)와 마츠시마(독도)는 조선 부속이라고 썼다.
1877년 당시의 최고 국가 기관인 태정관(太政官)이 ‘일본해 내 다케시마와 기타 한 섬을 판도 외로 정한다(주- 다케시마 는 울릉도, 그 외 한 섬은 독도를 뜻함)’는 지령을 내렸다. 두 섬은 판도 외(版図外), 즉 일본 영토가 아니다는 공식 선언이다.
1894년 메이지 정부가 국가사업으로 제작한 지도가 ‘대일본관할분지도(大日本管轄分地圖)’로 발간되었는데 두 섬은 기재되지 않았다. 일본 해군은 ‘조선수로지(水路誌)’1894년판과 1899년판에 두 섬을 기재했다. 이것은 독도가 조선 영토로 인식하고 있던 것을 나타낸다.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41호에서 울릉도 주변에 있는 ‘석도(독도)’가 자국 통치하에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메이지 정부는 이견은 내지 않았다.
(2)조선 식민지배 시작과 연결된 독도 약탈
그런데 1905년 메이지 정부는 러일 전쟁이 한창인 때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함과 동시에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격렬하게 추진하는 상황 속에서 독도를 강제로 약탈한 것이다. ‘미국은 필리핀을, 영국은 인도를, 일본은 조선을 취한다’는 미영일간의 제국주의적 합의를 배경으로 하여 1904년 2월 일본군은 러일 전쟁에 돌입함과 동시에 인천에 상륙한 후 한성을 제압했다.
같은 달 한일의정서 조인을 강요, 5월 대한(對韓)시설강령 각의 결정, 9월 제1차 한일협약을 맺었다. 러시아 해군이 일본 수송선을 가라 앉히는 상황 속에 11월 러시아에서 ‘리앙쿠르 도’로 불리던 독도에 러시아 해군 감시용 망루 건설이 가능하다고 예비 조사로 확인했다.
다음해인 1905년 1월 메이지 정부가 ‘리앙쿠르 도’를 ‘무주지(無主地)’로 단정하여 영토 편입을 각의결정해서 ‘다케시마’로 명명했다. 그 때 관계국인 조선과의 협의도 관보를 통한 공시도 없었다. 그 해 7월 독도에 망루를 착공하고 8월부터 감시 활동을 시작했다.
즉, 러일전쟁을 이기기 위한 군사 시설 건설을 목적으로 한 독도의 영토 편입을 비밀리에 강행한 것이었다. 이것은 전시임을 이유로 하여 타국령임을 인식하면서도 영토 편입을 한, 그야말로 제국주의적인 영토 획득이었다.
(이상의 역사 경과는 반월성 ‘일본의 독도 포기와 영토 편입’ (“조일관계사논집, 신간사, 2003)에 의거했음.)
그리고 그것은 1905년 10월 ‘을사보호조약’ 강제로 인한 조선 식민지배 개시와 함께 벌어진 것이었다.(인용 끝)
그러나, 일본 의회정당은 자민당으로부터 공산당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독도는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좌파진영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우익의 주장인 민족주의를 혐오하기 때문인지, 영토문제인 독도문제에 대해서 침묵 또는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국민 그 대부분이 독도가 어디에 있는 지, 독도를 일본이 지금까지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지금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들은 한국국민과 강하게 연대하여, 그것을 기초로 하여, 일본정부가 저지르고 있는 독도에 관한 민족배타주의선동에 항의하여, 그것을 깨부술 수 있는 싸움을 조직한다. 동시에 역사를 배우고,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립하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일본국민 전체가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한국을 시작으로 하여 아시아 민중과 국경을 넘어 연대하고, 전쟁과 세계화 흐름을 막는 운동에 전진할 수 있도록 더욱더 힘을 쏟도록 한다.
우리들은 다음 사항을 일본정부, 문부과학성에 요구한다.
- 독도는 일본 영토가 아니라, 한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토임을 일본정부는 인정하라
- 일본정부,문부과학성은, 중학교 신 학습 지도요령 해설서에 기재한 독도에 관한 기재를 당장 철회하라
- 일본정부,문부과학성은 독도 및 북방제도, 댜오위다오(센카쿠열도)를 일본영토라고 하는 기술을 당장 삭제하라
- 일제의 아시아 침략전쟁과 식민지 지배에 의해 살해당한, 또는 피해를 입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시작으로 하는 아시아민중에 대한 사죄와 보상을 일본정부는 당장 행하라.
일본의 노동자, 민중 여러분
일제 민족배타주의선동을 저지하자.
역사왜곡교과서에 반대하자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허용 말라
미군과 자위대의 일체화를 저지하자
미군재편을 반대하자
한일민중들은 연대하자
2008년 7월 20일
아시아 공동 일본 연락 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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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 원문을 보시려면 여기에 -> http://www.dangunee.com/13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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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위 성명서를 가지고 그간 독도에 관한 역사적 경과를 정리해보자.
우선 독도를 둘러싼 일본 입장 및 그 동안의 경과를 살펴보자
1868년 에도막부 몰락,
하급무사들의 왕정복고 쿠데타인 메이지유신 성공 후 신정부 수립
1869년 메이지정부 '조선국 교제 시말탐서'에 타케시마(울릉도), 마츠미사(독도)는 조선 부속이라고 기재
1877년 태정관(당시 최고 국가기관), 다케시마(울릉도) 및 기타 한 섬을 일본외 영토로 정함
1894년 메이지정부가 제작한 대일본관할분지도에도 두 섬은 기재되지 않음
1894, 1899년 일본해군 '조선수로지'에 두 섬을 기재. 조선 영토로 인식
1900년 대한제국 칙령 41호에서 석도(독도)가 자국 통치하에 있다고 발표, 메이지 정부 이견을 내지 않음
1904년 2월 러일전쟁 개전, 일본군 대한제국정부의 중립선언을 무시하고 서울 진주
9월 제1차한일협약 체결(한일 의정서)
11월 독도에 러시아 해군 감시용 망루 건설이 가능하다는 것을 조사로 확인
1905년 1월 메이지정부 독도를 '무주지'로 단정, 영토 편입 각의 결정, 다케시마로 명명
10월 을사늑약 (제2차 한일협약) 체결
이 내용을 토대로 몇가지 사실을 추출할 수 있다.
2. 일본은 에도막부, 메이지정부 초기까지도 독도를 자국령이라 인식하지 않았다.
3. 독도를 일본이 접수한 이유는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사적 요충지 및 유용성 때문이다.
4. 1905년 일본령으로 각의 결정했을 때는 이미 한일협약 후 대한제국의 실권이 거의 사라진 상태다. 그리고 곧바로 을사늑약을 체결, 외교권을 박탈해버린다.
3. 이번 교과서 해설서 기재가 문제인 이유?
이번에 삽입된 조항을 보면
[또한, 우리나라와 한국 간의 독도(상동)을 둘러싸고 주장이 다른 것 등도 다뤄, 북방영토와 같이 우리나라 영토,영역에 대해서 이해를 심화시키는 것도 필요하다]
라고 해서 일본언론에서는 한국측을 배려해서 고유영토라는 표현을 삭제했다고 하면 생색을 내는데, 이건 그야말로 대놓고 사기치는 것과 같다.
북방제도문제는 일본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다.
패전 후 러시아로부터 빼앗겨서 언젠가는 반드시 되찾아와야할 땅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독도를 북방제도와 같은 수준으로 이해시키라는 지도요령은 결국 같은 수준으로 다루라는 것이다. 즉, 독도도 원래 일본땅이었는데 현재는 한국에게 빼앗긴 상태로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와야 한다는 내용을 말한다.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은 이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4. 일본 정부의 독도에 대한 다음 수순은?
2005년에 시마네현 의회 가결이 문제가 되었을 때 일본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의 문제이므로 정부가 뭐라고 할 수 없다며 발뺌을 했다.
그로부터 3년후 이제 독도, 다케시마는 일본 영토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당당하게 가르쳐야한다며 일본정부의 입장으로 공식적인 발표를 한 셈이다.
그것도 한국을 배려해서 '고유영토'라는 것을 뺐다는 생쑈를 하면서 말이다.
즉 3년사이에 독도는 일본의 한 지방 단체 입장에서 일본정부의 공식 입장이 된 것이다.
앞으로 일본 정부가 할 일은 뻔하다.
이번에는 해설서에 명기했지만, 다음 개정때는 '해설서'에 명기한 이상 교과서에도 기록하지 않을 수 없다 라고 들고 나올게 뻔하다.
그리고?
교과서에 있는 이상 이 지역은 엄연한 일본영토이며 영유권문제는 협상에 들어가야한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
자기 나름의 논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이다.
그 외에 아시다시피 세계지도의 90프로 이상을 일본해로 장악한 이상, 독도 표기를 리앙쿠르 암석으로 바꾸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로비를 하여 중립지역임을 알린 다음, 그것이 완료되면 이제 러일전쟁때 했던 것처럼 다케시마로 바꾸는 작업을 해 나갈 것이다.
5. 현재 일본 내에서 독도 문제를 규탄하는 단체가 거의 없는 이유?
사정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시민단체 사람들도 대부분 독도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무슨 문제인지 거의 모른다. 그 동안 교과서에서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시민단체들도 모르기 때문에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이 있고
영토문제는 국가와 국가간의 거래 문제라고 생각해서 소극적으로 대응을 하는 경우도 많다.
6. 성명 발표후 '아시아공동연락회의'의 움직임은?
AWC는 7월 22일 오늘 문부과학성에 이 성명을 가지고 가서 전달하기로 했다고 한다. 물론 항의도 할 생각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전에 전화 연락을 해본 결과 담당자가 없다는 핑계로 접수를 거부할 것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방문해서 '아시아 공동 연락회의'의 뜻을 알릴 예정이라고.
또한 현재 일본 내 다양한 시민단체에게 이 성명을 메일링으로 발송한 상태이며, 한국 쪽 관련 시민단체에 보낼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은 독도문제를 규탄하는 성명이 일본내에서는 한 단체밖에 없지만, 앞으로는 좀더 이슈화를 시켜서 독도문제는 영토 문제가 아니라 역사 문제라는 인식을 확산시킬 예정.
7. 한국이 해야할 일?
이 부분이 글쓴이가 이번 성명을 번역하면서도 느낀 것이기도 하고 하고 싶은 말이다.
실효지배 등 국내 언론사에서 나오는 대책은 여기서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단 일본해 표기 문제 등 해외 여론전은 지금부터라도 지속적으로 펼쳐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내 여론전이다.
역사교과서 문제나 일본의 헌법 개정 문제가 그리 손쉽게 되지 않는 것은 일본내 평화시민단체들의 존재들 때문이다. 즉 독도문제도 일본정부의 움직임에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많으면 많을수록 한국쪽에게 유리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과 일본간의 민간교류, 특히 시민단체간의 교류는 지금보다 더욱 더 확대시켜야한다.
일본과의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한국쪽에서 일체의 교류를 끊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수록 민간차원에서는 더욱 교류를 심화시켜서 제대로 된 한국의 입장을 알릴 필요가 있다.
지금도 해마다 한국의 독립기념관에는 연간 1만명 이상의 일본인들이 다녀간다 (수학여행도 다수 포함)는 사실을 일본사람들이 독립기념관에 간 이유는?라는 글을 쓰면서 취재하기 전까지는 나도 몰랐었다.
이번에 독도성명을 발표한 '아시아 공동 연락회의'의 사람들도 한국을 자주 방문하고 역사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성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한국과 교류가 별로 없는 시민단체들이 호응과 관심도가 낮은 것을 보면 앞으로 한국쪽에서 지속적으로 해야할 일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어쨌거나 독도문제를 역사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번 성명을 환영하며, 앞으로 더 많은 일본 시민단체가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 있다면 달려갈 생각이다.
(그 동안 탄핵, 미 쇠고기 개방 문제 등 토론 차 AWC모임에 몇차례 참석한 적 있음)
* 참고로 이번 성명 관련한 내용은 이번주 목요일 KBS1 아시아 투데이에서 방영된다.
일본사람들이 독립기념관에 간 이유는?
2005년 시마네현 독도조례 가결 규탄 일본시민단체 성명
독도 불행의 씨앗은 42년전 한일협정 직전의 '독도밀약'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