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본 정부의 빚은 2007년 849조엔으로 기록, 사상최대를 달리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경제가 여전히 의연하게 버티고 있는 것은 최강의 제조업때문이다.
이 제조업의 스펙트럼은 매우 다양한데,
보잉기 제작에 들어가는 비행기용 각종 소재부터,
다리를 놓는 강판, 늘려도 끊어지지 않는 초합금 등
국가기간산업을 떠받드는 산업부터 부품산업까지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독특한 물건들을 만들고 있다.
다들 자기 나름의 강점을 가지고 어필을 한다.
일본의 이런 강한 제조업은 결국 정품문화가 있다.
2.
제조업에서 눈길을 돌려 일반적인 일본사람들의 소비형태를 보자.
얼마전 H2, 미투 등을 그린 아다치 미츠루가 판매권수에서 도합 2억권을 넘겼다고 한다.
한국에서 만화 단행본 시장이 거의 바닥을 기고 있는 것에 비하면 가공할 만한 수치다.
아다치 미츠루의 뛰어난 재능을 둘째치고 어쨌거나 2억명이 산 것이다.
(동일인물의 반복구매 포함).
일본에서도 만화방은 널려있다.
그리고 누군가 잡지를 사오면 혼자 보는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돌려본다.
게다가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친구들은 편의점에 가서 관심있는 만화를 서서 읽고 만다.
모든 사람이 만화를 사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행본이 나오면 불티나게 팔린다.
다들 정가에 정품을 사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아낌없이 투자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니 일본만화산업이 산다.
3.
왜 일본사람들은 정품을 쓸까.
일본사람들의 시민의식이 매우 높고, 인간성이 좋아서?
이런 문제를 인간성으로 따져 보는 것은 썩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한국 영화나 만화가 위법다운로드나 스캔본이 널리 돌아다니는 것이 꼭 국민성이나 인간성의 문제가 아니듯 말이다.
그 몇가지 이유가 될 것을 뽑아보았다.
첫째 일단 짝퉁이나 복제품이 유통되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
영화의 경우, 한국처럼 웹하드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P2P로 연결해서 봐야하는데 그러느니 차라리 비디오가게에서 빌려다보거나 케이블TV로 보고 만다.
명품 가방 등 짝퉁시장은 어떠한가.
물론 일본 내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정품과 똑같은 짝퉁을 원하는 소비층이 분명이 존재한다.
실제로 일본 TV에 언젠가 방영된 짝퉁 암시장을 본 적이 있는데
중간에 단속이 들어오면 물건을 버리고 그냥 그대로 도망을 간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위험한 시장을 찾는 수고를 하기보다는 일본인들은 열심히 월급을 모아서 비싼 제품을 사는 길을 택한다.
둘
'노렌'이라고 하는 자존심이다.
일본 가게마다 걸려있는 가게 문양이 있다.
'노렌'이라고 하는데, 이 '노렌'은 하나의 상표로 자기 가게의 제품, 음식, 품질을 대대로 이어져온 품질을 보증하는 보증서 같은 역할을 한다. '노렌'은 한마디로 자기 가게의 자존심인 것이다. 즉, 자기가 만드는 물건에는 자기만의 자존심이라는 것을 담는다.
물론 처음에는 이것저것을 베끼는 식으로 시작하기도 하지만 결국 닌텐도처럼 독자적인 제품으로 성공하는 사례가 많다.
셋
중고의 자연스러운 유통시장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책도 그렇고,만화도 그렇고,CD가 그렇다.
정품을 정가에 주고 사기 힘들다면 정품을 약간 저렴하게 중고로 살 수 있는 시장이 있어야한다. 일본에는 이런 시장이 프리마켓 등 비정기적인 시장 말고도 일반적으로 많이 존재한다.
수많은 중고책방이 그렇고, 동네마다 곳곳에 포진한 리사이클샵이 그렇다.
중고의 유통도 어떤 의미에서는 결국 정품인 것이다.
넷.
어쩌면 일본의 '이치닌마에'와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이치닌마에'란 一人前라고 해서 음식 '1인분'을 뜻한다.
음식 1인분이 정품문화와 무슨 관련이 있냐고
일본인들에게는 같은 냄비를 여러사람이 수저로 같이 떠먹거나
반찬을 공유해놓고 밥만 각자 놓고 먹는 경우가 없다.
각각 반찬, 밥,국 다 1인씩 먹을 수 있도록 되어있다.
즉 자기 것과 남의 것의 구별이 확실하다.
가끔 진행하는 한국어 수업때도 자기가 마실 차는 확실하게 따로 준비해온다.
그래서 일본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치닌마에'가 된다는 뜻이다.
1인분은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완성품이자 완결된 형태를 뜻한다.
즉, 다른 사람은 어찌되었든 간에 자기 것만은 제대로 하나의 완성되고 제대로 된 것을 소유하려는 버릇이 있다.
따라서 물건을 구매할 때도 이런 작동 원리가 동작한다.
물건을 구매할 때도 자기 나름의 납득의 과정을 거쳐하고, 명확한 자기것이 되어야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물건을 만들 때도 신문기사나 노래가사도 저작권 도용은 일본사회에서 매장 1순위가 된다.
즉 잠깐 금방 쉽게 팔 수 있는 물건을 만들었다가 그것이 도용하거나 남의 것을 베낀 것이라면, 쉽게 회복이 안되고, 사회적으로 피해를 끼친 사람은 이미 도덕적으로 아웃이 된다!!
이런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
일본사회에서는 되도록 설령 그것이 비싸더라도 정품을 사는 문화가 정착되었고,
정품을 통해서 안정적으로 수입을 확보한 회사나 작가는 더 나은 창작환경과 갖고 보다 업그레이드된 제품을 내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3.
여기서 한국을 잠깐 둘러보자.
이렇게 사람들이 정품을 사서 쓰는 정품문화가 발달한다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또다른 적과 싸워야 한다.
유사상표와의 전쟁이다.
짝퉁이라는 것을 알고 의도적으로 사는 사람은 그렇다 치자.
문제는 정품인 줄 알았는데 속고 사는 사는 경우다.
다음 사진을 보자.
이 사진만 본다면, 일반 소비자인 나는 길가다 만약 이런 상표를 본다면 어떤 것이 정품인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거 같다.
이 사진은 길거리에서 세일을 하면서 유사상표로 물건을 판매하는 경우다.
결국 사는 사람이 주의를 기울여서 유사상표인지 아닌지 파악하고 사야한다는 이야기다.
모든 이에게 정품을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브랜드 상품을 살 때 그것이 정말 진품인지 아닌지까지도 따져보고 사야 제대로 된 쇼핑을 할 수 있는 현실이 아쉽다.
정품문화란 결국 소비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자도 같이 짊어지고 가야할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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