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광주민중항쟁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항쟁이 일어난 뒤 8년만이었다.
88년 중학교 3학년때 광주 청문회로 소란스러웠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문회 스타로 뜨던 그때, 공영방송에서 낡은 영화필름처럼 돌아가던 다큐멘타리를 보고 나서 였다.
(아마 지금 중학생들은 광우병과 촛불집회의 기억이 평생 가리라...)
그때만 해도 집권세력이 광주학살의 발포자이자 피를 묻힌 세력이어서 '광주항쟁'를 드러내놓고 논한다는 것은 뭐랄까 두려운 일이기도 했다.
2.
대학에 들어간 후로 '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 황석영씨가 쓴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읽고 광주의 실체를 보다 명확하게 인식했다.
그리고 해마다 5월이면 학내 게시판에 전시되던 피로 범벅된 사진들...
노태우가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해먹던 그 해,
같은 하나회 출신으로 공수여단장이었던 '최세창'씨가 국방부장관이던 그때
거리에 나가는 것은 반정부시위 뿐 아니라 광주원혼들이 가졌던 뜻에 대한 적극적인 동참이기도 했다.
'광주'는 뜨거움이었다.
지금은 386세대라고 불리지만 당시 80년대 학번들을 문학평론가 '김현'씨는 '광주세대'라 불렀다. 그가 칭한 광주세대란 '살육과 절망만이 남은 세대'란 뜻이다.
그래도 역사가 전진한다는 것을 느낀 것은 내가 광주 망월동묘지를 두번째 참배하러 간 날이었다. 구 망월묘역의 한 묘비 앞에는 '전두환'이 구속되는 사진이 일면 톱으로 장식한 신문이 놓여있던 것을 보았을 때다.
학살원흉이 자신의 후계자인 사람의 명령에 의해 체포되었으니...그나마 원혼히 풀렸으려나...
햇살이 내리쬐는 5월, 그 해 망월묘역은 숨막히는 정적속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영화속 한 장면 같았다.
3.
대학 졸업 후 광주를 잊고 있었다.
내가 광주를 알게 된 그 시절부터 또한 20년이 흐른 것이다.
하긴 대학 졸업한지도 벌써 10년이 흘렀다.
세월이란 참 빠르지.
28년전에는 '집회'를 하려면 계엄군의 총탄을 맞을 각오를 했어야했지만,
그 피의 댓가로 오늘 우리는 연예인도 참석하는 문화제를 경찰의 원천봉쇄없이
할 수 있는게 아닐까.
그나마 이렇게 블로그에서라도 짧았단 광주에 대한 기억을 기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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