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벚꽃으로 열병을 앓는 일본

다시 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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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은 지구가 생긴 이래 수십억년을 되풀이되어 왔지만, 그래도 봄이 오면 설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일본에서 봄은 유난히도 소란스럽다. 먼저 2월말부터 날리기 시작하는 삼나무 꽃가루로 전국민이 기침,콧물 등으로 몸살을 앓고, 그 후 삼나무 꽃가루가 거의 다 날렸을 때 피기 시작하는 벚꽃으로 열병을 앓는다.

삼나무 꽃가루가 일본 전역을 숨막히게 한다면, 일본 열도 남단부터 피기 시작해 북상하는 벚꽃은 1억 2천 일본인들을 들뜨게 한다.


2.
우에노 벚꽃, 만개하다.

도쿄의 벚꽃은 일본 기상청 예상보다 3-4일 개화가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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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도쿄에서 '벚꽃놀이'의 메카인 '우에노 공원'을 다녀왔다.
우에노 공원은 말그대로 인산인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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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원 내 벚꽃 길을 걸으니, 중국어,한국어,영어,아랍어 등 세계각국의 언어가 떠다닌다.
우에노를 찾은 상춘객들이 비단 '일본인'뿐만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3. 일본 벚꽃놀이에는 전투적 자세가 필요하다.


일본  벚꽃놀이의 특징을 잠깐 정리해보면

[1]. 벚꽃 나무 밑에 자리잡기 싸움은 치열하다. 

      목 좋은 곳은 미리 전날부터 자리를 확보하고 낮부터 누군가 지키고 있어야 한다. 보통 3월말경 입사하는 신입사원에게 이 특명이 맡겨지기도 한다. (고지를 사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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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리담당은 이렇게 낮부터 진을 치고 회사 사람들이 올때까지 버텨야 한다 -_-;;

[2]. 먹는 것은 각자 준비한다. (보급품 준비) 특히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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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평일에는 업무를 조금 줄이고 가볍게 2-3시간으로 끝낸다. (봄의 신고식)

[4] 주말에 낮부터 본격적으로 취한다. (승전보를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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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주말에는 특히 젊은이들끼리도 몰려나온다.

4. 왜 벚꽃이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나.

여기서 잠깐, 왜 벚꽃이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 되었을까. 한국에서도 벚꽃놀이를 즐기지만 일본처럼 이렇게 전국 곳곳, 동네 곳곳이 들썩이지는 않는다.

 일본에서 벚꽃의 역사를 잠깐 살펴보면 원래 처음부터 일본인들이 봄꽃놀이로 '벚꽃'을 즐긴 것은 아니었다. 고대 처음 일본 수도가 있었던 '나라'시대만 해도 '귀족'들이 꽃놀이를 즐기는 대상은 중국,한국의 영향을 받은 '매화'였다. 지금도 일본 동네 공원 중 일부에서는 매화가 먼저 봄을 알리는 전령사로 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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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것이 '헤이안(현 교토) 시대'를 거치면서 본격적으로 벚꽃은 봄의 꽃으로 '매화'를 밀어내고 주역으로 등장한다. 그 전 까지만 하더라도 '벚꽃'을 보려면 산으로 가야했던 것이 '교토'곳곳에 '벚꽃'을 심으면서 귀족들이 즐기는 꽃이 된 것이다.
 흔히 일본을 상징하는 것으로 '벚꽃'을 들고 이 '벚꽃'에는 '죽음'이라는 이미지가 따라다니는데, 귀족이 문화의 중심이었던 '헤이안 시대'만 하더라도 '벚꽃'에 '죽음'의 이미지는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벚꽃'은 그저 새 봄을 상징하는 '처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후 일본이 극심한 내전에 휩싸이고 칼을 가진 '사무라이'들에게 권력이 넘어가면서 '벚꽃', 일본말로 '사쿠라'에는 피냄새가 배이기 시작한다.


특히, 대중들에게 '미소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벚꽃'이 '죽음'을 상징하는 꽃으로 변하게 된 데는 에도시대에 인기가 있었던 가부키 '츄신구라(忠臣蔵)'의 영향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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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츄신구라'란 한을 품고 죽은 주군을 위해 47인의 사무라이가 복수를 하고 할복을 한 실제 사건을 모델로 한 이야기인데, 이 '츄신구라'가 가부키로 올려지고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면서 사용되었던 모티브가 바로 '벚꽃'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주군을 위해 복수를 했지만 에도막부는 사회질서를 위해서 '개인적인 복수'를 금하고 있었고 '할복'을 명한다. 이때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花は桜木、人は武士)라는 대사가 흐르면서 사무라이들의 죽음과 함께 벚꽃이 휘날린다. 벚꽃은 가부키라는 무대를 통해서 일반대중에게 '죽음'과 '생'이라는 이미지를 강하게 덧칠하게 된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벚꽃'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무라이를 대변하는 하나의 '미학'으로서만 존재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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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근대에 들어오면서, 페리의 내항 이후 정세가 급변하던 막부 말기, 일본 열도는 자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무라이'들이 넘쳐나기 시작,'벚꽃'은 급진성을 띄기 시작한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한순간 화려하게 폈다 속절없이 지는 '사쿠라'에 비유하면서 혁명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렇게 위태위태한 '벚꽃'은 결국, '하급무사의 왕정복고쿠데다'로 막을 내린 메이지 유신이후 본격적으로 정치 이데올로기를 대표하는 꽃이 되고 말았다. 러일전쟁 승리후 일본이 군국주의로 치닫게 되면서, 전쟁터에 나가서 개죽음을 당해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야스쿠니 신사가 만들어진다. 벚꽃은 그런 전쟁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군인들의 묘비를 장식하는 꽃이 되었다. 가미카제가 되어 태평양을 건너기로 한 소년들이 가슴에 꽂고 떠나던 것도 '벚꽃'이었다.
 
 고대 일본에서 수줍은 '소녀'의 이미지를 품고 있던 '벚꽃'은 '칼'이 천년에 걸쳐 춤추고 난 뒤 애꿎게도 '죽음'을 미화하는 꽃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패전으로 전쟁이 끝나고 '벚꽃'은 다시 평범한 일본인들이 봄이 뒤면 그저 즐겁게 취하고 바라볼 수 있는 꽃으로 돌아왔지만, 긴 역사를 통해 덧칠된 벚꽃의 이미지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5. 왜 지금도 일본인들은 벚꽃에 열광할까.

그렇다면 지금도 일본인들이 벚꽃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일본에서는 어디서든 벚꽃을 볼 수 있다.
   한국에서는 봄을 느끼는 것은 개나리, 목련이라면 일본에서 흔히 길가다 접할 수 있는 나무는 벚꽃이 대부분이다.  일본에 살다보면 느끼는 것인데 정말이지 곳곳에 벚꽃을 심어놓았다. 그래서 무더기로 피어있는 벚꽃을 보면 취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벚꽃이 있어 먼 걸음을 하지 않고도 쉽게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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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회사 근처 공원, 봄이면 어디를 가든 일본에서 벚꽃은 쉽게 접할 수 있다.

2.
사실은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인데, 그냥 연례행사이기 때문이다. 즉 건수다!
일본 속담 중에 '꽃보다 경단(花より団子)라는 표현이 있는데 아무리 꽃구경이 신난다 할 지라도 결국 '먹고 마시고 취하는' 게 우선인 것이다. 한국말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하듯이. 벚꽃에 열광하는 이유는 지루한 일상속에서 잠시나마 벚꽃과 함께 탈출을 하고 싶어서 일 것이다. 즉 '벚꽃놀이'를 빙자한 술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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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식간에 피었다, 깨끗하게 지는 벚꽃이 자신들을 대변해준다고 생각한다.
 앞서 '꽃은 벚꽃, 사람의 무사'라는 말이 있다고 했듯이 여전히 '사무라이'의 미학이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은 일본에서, 무리지어 확 피었다가 순식간에 지는 벚꽃이 일본인들의 근원적인 정서로 남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년이라는 긴 시간을 기다려 단 열흘간만 볼 수 있는 벚꽃의 성질은 일본인들이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인생의 덧없음, 속절없음을 대변해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다린 만큼 열광하지 않고는 이 봄을 그냥 보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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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진정한 봄은 낙화 후!!

벚꽃이 만개한 요즘, 지기까지 일주일 정도 남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벚꽃이 만개한 것도 멋지지만,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이 더 마음에 든다.
 
그것은 왠지 화려하기는 하지만 어수선한 벚꽃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난 후에야,
세상에 좀 더 차분해지고 진정한  봄이 찾아온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봄은 결코 벚꽃 혼자서 열어가는 것이 아니니까.....

 
* 우에노의 벚꽃 풍경 이모저모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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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을 담기 위해 다들 필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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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프레까지...-_-;; 아저씨가 왜 저러고 있냐고 뒤에서 일본인 여성끼리 이야기함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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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놀이 할 자리는 이렇게 정확하게 줄이 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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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장사, 포장마차는 우에노 공원 구석에 따로 마련되어 있다. 도쇼궁 가는 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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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떡볶기도...-_-;;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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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 벚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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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도쿄 타워 앞 시바공원에서


벚꽃이 만발한 우에노 공원 이모저모 <2>


도쿄를 에세이처럼 읽으면서 일본어와 친해진다
->
도쿄를 알면 일본어가 보인다!!! 고고싱


* 히라가나 부터 기초문법, 현지회화,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까지,
->당그니의 좌충우돌 일본어  (만화로 배우는 일본어 연재중!!)  


Posted by 당그니
일본! 이것이 다르다! l 2008/03/31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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