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주일전에 산 연고를 꾸준히 발라주었더니 갈라진 손바닥에서 피가 나오는 것이 멈추고
많이 회복되었다.
'주부습진'.
이번 겨울 일본에서 혼자 살면서 찬물에 손을 담그다 보니 생긴 피부트러블이다.
사실, 손바닥에서 피까지 났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혼자 살다보면 인스턴트 음식에 질리기 마련, 아내가 해주었던 닭고기 조림이 생각이 나서 닭 허벅지 살을 사온 날이었다. 아내에게 국제전화를 걸어서 요리방법을 강습받았는데, 닭을 잘 씻지 않으면 비린내가 많이 난다고 했다.
난생 처음 닭의 맨살을 들고 마루를 뛰어다녔다.
'일명 닭을 들고 튀어라!'
부엌에는 따듯한 물이 안나오므로, 욕실에 가서 뜨거운 물을 받아놓고 찬물로 닭을 씻으면서 시린손을 데우는 식이었다. 지금도 차갑디 차가운 닭의 허벅지 감촉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닭은 맛있게 먹었는데, 문제는 닭을 씻고 난후 손을 제대로 씻지 않은 탓인지, 하룻밤새에 손바닥이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후 피까지 났던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닭요리는 해먹지 못하고 있다. -_-;
2.
며칠전 카레를 만들다가 또 손을 베었다.
감자를 썰다가 왼손 중지를 칼날이 살짝 파고 들었다.
젠장 같이 썰어버렸네 - -!
문득 아내가 일본에 잠깐 왔을때, 야채 써는 방법 중 주의해야할 점을 알려준 기억이 났다.
재빨리 밴드를 붙여서 피가 더 나는 것은 막았지만 불편했다.
회사에서 하는 일이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 손이 망가지면 일할때 여러모로 걸리는 게 많다.
비단 일 뿐만 아니라 손이 이래저래 엉망이 되고 나니 혼자 음식 해먹는게 참 피곤한 일임을 깨닫게 된다.
다른 건 다 익숙해졌는데, 손에 밴드까지 감고 야채썰고 설겆이 하려니 대략 난감.
3.
수세미를 들고 자기가 먹은 밥그릇을 닦고 너저분한 싱크대를 행주로 정리하면서
나는 어머니 생각이 났다.
결혼하기 전까지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셔서 음식장만을 하시던 어머니.
새벽마다 부엌에서 콩콩콩 무언가를 썰던 소리가 나를 깨우던 그때
때때로 부엌에선 비명소리가 났다.
칼에 찔린 것이다.
검붉은 피가 누우런 어머니 손가락사이로 나올떄 나는 어머니에게 밴드를 가져다주면서 핀잔이었다.
'그러게 조심 좀 하지 그랬어'
그냥 그 상황이 싫었던 거다. 피를 보는 것도 싫고 어머니가 아픈 것도 싫고.
그러고 나선 언제 그랬냐는 듯 나는 어머니가 해준 밥을 먹고 학교에 갔고, 출근을 했다.
결혼해서도 그랬다.
아내가 칼에 찔려서 소리를 지를때면 부산떨며 밴드를 찾아서 가져다주었지만,
'좀 조심하지 그랬어' 이 한마디로 끝이었다.
어쩜 그렇게 칼에 찔린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는 다들 검붉던지.
때때로
아내의 손을 잡았을때 거칠다고 느껴지면
'핸드 크림 좀 제대로 바르지 그래'
라며 걱정을 빙자한 잔소리를 한 기억도 난다.
4.
다시 내 손을 본다.
한때 무슨 남자가 여자보다 손이 곱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들었던 그 손.
매일 쌀을 얹고, 재료를 다듬고, 도시락도 싸고, 설겆이하고
몇달간 이렇게 반복했더니 손가락 끝이 거칠다.
손바닥 색깔도 군데 군데 누런 색을 띤다.
어머니의 손이 그랬다.
아내의 손이 그랬다.
그제서야 나는 깨닫는다.
칼에 베인 아내나 어머니에게 내가 해줘야할 일은
밴드를 가져도 주고 한 소리 하는 게 아니었음을.
그때 내가 해야할 일은 아내나 어머니 대신 칼을 붙잡고 대신 요리를 했어야 했었다.
정작 내 자신이 혼자 살면서
밴드까지 감고 야채를 씻고 과일을 깎을 때
나는 누가 대신 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분명 아내도, 어머니도 그랬을 것이다.
단지 말을 안했을 뿐.
해줄 사람이 없고 할 사람은 오로지 자기 뿐이라는 생각에
그냥 대충 수습하고 칼을 잡았을 뿐.
아내의 손이 거칠어졌다면
핸드크림을 바르라고 핀잔할게 아니라
직접 발라주며 손상태를 살폈어야 했다.
한동안은 물을 만지지 못하도록 대신 부엌일을 했어야 했다.
그러려면 적어도 요리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는 센스가 있어야 했다.
5.
그러고 보니 이제야 이해가 간다.
주말이 되면 왜 아침마다 아내가 밥 대신 빵이라도 사와서 먹자고 했는지를
본가에 가면 왜 아내가 어머니를 무조건 밖으로 모시고 외식을 하려고 했는지를.
그 사람 입장이 되어서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웃기는 것은
나 또한 주말만 되면 출근 등 쫒길 일이 없다보니
손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아 빵을 사다 먹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가지 위안이 되는 사실은
내가 점점 요리에 흥미를 갖고 이것저것 만들어 먹는 재미를 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아침 와이드 쇼에서 '요리'코너가 나오면 눈여겨 보기 시작했고,
회사 출근해서 자취하는 일본사람과 나누는 화제도 '요리'가 되었다. -_-;;
새 봄이 되고
몇개월 후에 다시 딸과 아내와 같이 살게 된다면
적어도 주말에라도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야 줘야지.
마파두부도 만들고, 해물탕도 끓이고, 된장찌개, 김치찌개? 그건 기본이지!
두부전도 부치고, 부침개도 부치고...
6.
어제 해물탕을 끓였다.
주말에 사 둔 생선의 유통기한이 간당간당해서
모조리 넣고 끓였더니 많이 남았다.
오늘 아침
나는 출근 하기 전
다시 해물탕을 끓이면서 생각한다.
결국,
요리란 누군가 같이 먹어줬을 때만이 진짜 완성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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