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한때 황지우 시를 좋아했다.

지금도 한국에 있는 집에 가면 그때 샀던 시집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있을 것이다.

이미 읽지 않은지 10년도 더 되어간다.

한때 내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던 시 중 하나.

뼈아픈 후회

누구나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만의 사막속에서 자신만의 고열을 견디어 내는 거다.

혼자 밥 차려먹으면서 문득 '고열'과 '사막'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인터넷에서 황지우를 찾았다.

한때 나는 삭막한 직장에서 친한 사람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시를 아침마다 한편씩 보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중 한 사람은
황당하게 '주기도문'을 답신으로 보내왔다.

아...............
이 괴로운 직장생활에서 왜 나를 시험에 드시나요 ㅜ.ㅜ

더 황당한 건
그 사람이 바로 지금의 와이프라는 사실. -_-;;

어쨌거나,
불교신자에 가깝거나 한때 유몰론을 신봉했던 나에게
시는 한편으로 내가 읽는 하나의 복음이었고
걸어가야할 지도였고
땡전한푼 없이도 유쾌할 수 있는 양식이었는데....

먼 기억 속에서
이렇게 문득 그의 시가 떠오른다.

그리고 난 지금도 이 고열을 견디며
사막 한 복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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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후회
                        -황지우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 신전
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ㄱ,
뿌리째 굴러가고 있는 갈퀴나무, 그리고
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

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
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 못했다.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
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
神像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
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

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
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
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
그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

젊은 시절, 내가 自請한 고난도
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헌신,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
그것도 파워랄까, 그것마저 없는 자들에겐
희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
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 주는 바람이
떠돌다 지나갈 뿐
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
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 기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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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일본생활 이모저모 l 2008/03/01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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