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억양과 발음이 중요한 이유?
외국어때문에 스트레스를 하나쯤 앓고 사는 시대다.
외국어를 공부하면 다들 문법, 회화, 각종 시험 점수 등을 어떤것에 주안점을 두고 해야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을 만나보면 의외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되는 지 쉽게 알게 된다.
최근에 내가 겪은 몇가지 에피소드는 그 중에서 '억양'과 '발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던 사례다.
1.
첫번째 에피소드 '제비 다리를 부러드리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본인 친구 사코다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네'
'그럼 바꿔드릴게요!'
이렇게 걸려온 전화를 통해 나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일본사람과 통화를 하기 시작한다.
이런 통화를 하는 이유는 한가지.
한국어를 배우는 수강생들로 하여금 네이티브인 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질문을 하게 함으로써 실전에 익숙해지게 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어 실력이 중급 이상인 일본인 학습자의 전화를 받을 때 꽤 긴장한다는 점이다. 긴장하는 이유는 별거 없다.
알아듣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ㅜ.ㅜ
'저기...지르무니(질문이) 이써요...제비를....잡아오기만 해봐라. 부러드릴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부러드릴 수 밖에 없다와....'
흥부와 놀부 이야기가 아마 교재에 나온 모양이다.
열심히 상대의 질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발음과 억양 문제로 처음에 나는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했다.
나는 '부러드리다'는 발음을 듣고 이것은 경어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동사다
이런 취지로 한 1분간 설명을 했다.
그런데 실제 질문의 요지는 '부러뜨릴 수 밖에 없다' 와 '부러뜨리는 수 밖에 없다'의 차이가 뭐냐 였다. 뻘쭘.
우리는 흔히 '외국어'를 공부할때 문장만 잘 구성하고 말만 잘 하면 되지 억양이 무슨 대수냐고 흔히 이야기 한다. 맞다 맞는 말이다. 영어든 일어든 말을 아무리 잘 해도 그 안에 든 내용이 없다면, 제대로 문장조차 구성을 못한다면 그 사람이 외국어를 잘 한다고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발음과 억양에 대해서 무시하고 막 이야기를 네이티브에게는 상당히 고통을 안겨주는 셈이 된다.
2. 두번째 에피소드 '1대주주? 6대주주?'
그 다음날 받은 전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강생이 내게 한국어로 질문한 내용을 잠깐 옮겨보면
'저기 최대주주란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6대주주란 말도 있어요. 그러면 이게 같은 뜻인가요?'
그래서 나는 6대 주주의 뜻을 설명한 후 '그 중에서 주식을 가장 많이 가진 주주가 최대주주다'라고 2-3분간 설명을 했으나 해당 수강생은 '어렵다'고 했다.
헛....
그래서 다시 '잘 들어보세요^^' 하면서 설명을 했지만 역시 이해를 못했다.
결정적인 문제는 내가 질문의 요지를 또 잘못알아들었다는 거다.
질문은 '최대주주와 1대주주와 같은 뜻이냐' 는 건데
분명 내 귀에는 그 '1대주주'가 '6대주주'로 들렸다는 거다.
그럼 내 귀에 보청기라도 해야되는 거냐. 그건 아니다.
질의응답이 원활하지 않아서 사코다씨와 통화를 하니
그로부터는 정확하게 '1대주주'라고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즉 나는 '최대주주와 1대주주가 같은 것이냐'는 질문에
그냥 '네'하면 될 것을 '6대주주'로 알아듣고
또다시 삽질(?)을 해대니상대가 못알아듣는 것 당연한 일.
뻘쭘2.
참고로 사코다씨 수강생에게 전화를 받으면 일본어로 설명하면 안되는게 룰이다. 한국어로만 질문을 받고 한국어로만 설명을 해야한다. 그러다 보니 결국 그날 배가 산으로 갔다. -_-;;
이게 한국어라서 그렇지, 만약 입장을 외국인으로 바꿔놓고 생각해보라.
어설픈 발음은 의사소통의 최대 장애물이다.
3. 세번째 에피소드 그녀의 이름은 '혼다 리에'!!
이번에는 좀 다른 에피소드다.
얼마전 한국의 모은행 인터넷 뱅킹 비밀번호 3회 오류가 나서,
해제차 도심에 있는 동경지점에 찾아갔다.
들어가자마자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 인삿말이 들렸다.
한국 은행이니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인삿말을 했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극히 자연스러운 서울말이 흘러나왔다.
"네 안녕하세요"
"저...이거 한국에 있는 은행 비밀 카드 오류가 나서 그러는데요...."
그러자 몇가지 필요한 서류와 대화를 나눈뒤 처리를 해주기 시작했다.
한국에 있는 통장 개설 지점과도 그녀는 통화를 했다.
그렇게 10분 정도 기다리는 동안 문득 내 눈 앞에 있는 명함이 보였다.
RIE HONDA
혼다?
어라 일본인 이름이네...
흠...내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설마 일본인?
일본사람이 한국어를 하면 분명 억양이나 발음 등 이상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내 경험에 의하면,
아시아나 항공 승무원이 그랬고, 한국에서 만난 일본사람이 그랬고, 도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만난 일본사람이 그랬다.
설마 지금 업무처리를 해주는 사람이 '혼다 리에'일리는 없겠지.
한국사람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유창하게 할리가 없어...
그런데 왜 이 명함이 여기 있는 것일까. 갸우뚱!!!
잠시후 한국측 담당자와 직접 전화연결이 되어서 '보안카드 오류'가 해제되었고, 한국측 담당자는 일본 동경지점에 있는 담당자 이름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름을 몰라서 '저기요'하며 전화를 넘겼는데, 그녀는 자기이름을 '혼다 리에'라고 밝혔다.
허거덩....
일본사람이었다니...
중요한 건 내가 명함이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을 애써 믿지 않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왜냐면 한국사람과 발음과 억양이 똑같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메모지에 '동작구'를 '동장구'라고 쓴 것 빼놓고는 정말 퍼펙트였다.
물론 그녀가 재일교포출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재일교포의 경우 '혼다'라는 성을 쓰는 경우를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한국에 유학이라도 다녀왔느냐'라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못 물어본 이유는 두가지다.
첫째넌 개인적인 볼일을 보러 간 장소에서 개인 신상에 대해서 물어보는 것도 웃기고,
두번째는 일본에서 8년째 살면서 한국사람이 나 혼자인 일본인회사에서 6년이상 근무하면 일본어가 자연스럽게 네이티브에 가깝게 가기 마련인데, 잘 모르는 일본인들을 만날때마다 신기하다는 듯 '일본어를 잘 한다. 어떻게 된거냐' 이런 질문에 진절머리를 쳤기 때문이다.
한국사람에게 한국어 잘한다는 게 욕이듯 아마 내가 10년, 20년 있어도 일본어 잘한다는 소리를 들어야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니 여간 짜증이 나는 일이 아니었던 기억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네이티브와 똑같냐고 하면 대답은 NO이고, 여전히 습득중이지만)
그런 내가 '혼다 리에'씨의 발음과 억양을 듣고 '한국어'를 언제부터 공부했냐고 물어보고 싶어졌으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암튼 사생활 영역이기도 해서 결국 물어보지 않았다.
4. 억양은 주파수다 발음은 '코드'다.
한국인이 한국인과 대화를 할때 편한 이유는 억양이라는 주파수가 맞기 때문이다.
억양이 다른 지방 사투리가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이유도
(예를 들면 개미 퍼먹어.....-_-;; 이런 것)
같은 언어권이라고 해도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낯설음 때문이다.
발음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일본인 수강생이 '사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한참 듣고 나서 그것이 '사건'을 의미했다는 것을 알았다.
(일본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ㅓ 발음이 없어서 ㅗ 로 발음하기 쉽고, ㄴ을 ㅇ으로 발음하기 쉽다)
한국어가 흔히 '표음문자'라고 하지만, 실제 한국어 발음 또 다르다.
단적인 예로 '쓸 수 있다' 라는 말을 실제로 할때는 '쓸 쑤 읻따'라고 하듯이 현지인들이 익숙하게 쓰는 발음에 맞추지 않으면 시쳇말로 '코드'가 맞지 않아 버그가 나게 된다.
'전혀'란 말도 그렇다. '전혀'란 말에 악센트를 '전'에 주게 되면 '처녀'로 들린다.
지금까지 '한국어'를 예를 들어서 그렇지,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외국어 공부할때 답은 명확해진다.
문법, 표현, 어휘 이런 것은 사실 외국어의 기본이다.
그러나 외국어 습득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현지인과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커뮤니케이션을 할때 현지인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익숙해지려면 억양과 발음은 결코 무시못한다.
처음 배울때부터 억지로라도 따라서 네이티브에 가깝게 발음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외국어니까 그래야한다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고치기가 더 힘들고 실제 회화를 할때 의사소통이 안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때문이다.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생각하면서 외국어를 배워보시라.
혹은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며칠만 가르쳐보시라.
그러면 그 이유가 좀더 명확해질 것이다!!!!
cf> 한국어 발음을 못하는 일본인이 있는 것처럼 한국인이 잘 발음 못하는 일본어 발음도 상당수도 つ、ざ,,ず,ぜ,ぞ 이 외에 장음 구별 등 많다. 영어의 f,v,z,r 등....사돈 남 말 할때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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