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토요일 아침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들어온지 13개월이 되었는데, 다시 일본으로 떠날때가 되었다.
내가 일본으로 복귀하기 전에, 올해 어머니 환갑을 맞이해서 형네와 동생을 포함해서 가족 전체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거창한 환갑잔치보다는 이게 더 실속이 있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비용은 더 많이 들지만 여행은 부모님만 가시는 것은 아니니.

2.
제주도는 내가 대학교1학년때 혼자 여행을 다녀온 곳이기도 하다.
철없던 그때, 실연(?)당했다는 핑계로
삼촌이 제주도에 근무한다는 든든한 배경을 갖고
새벽 고속터미널에서 광주행 버스표를 끊었다.
광주에 도착해서, 완도행 직행버스로 갈아타고 전남지역을 구비구비 돌았다.
완도에서 배로 3시간만에 제주도로 주파할때쯤 제주도는 어느새 저녁녘 구름에 묻혀있었다.

책만 하나 달랑 들고 제주도 여기저기를 다녔다.
점심은 작은어머니께서 싸주신 김밥을 들고 며칠간 한라산이며 정방폭포며 천지연폭포, 목석원, 성산일출봉 등 여러군데를 돌아다녔다.
혼자 원없이 그림같은 풍경을 봤지만 멋진 사색이 깃든다거나 생각이 깊어진다거나 하는 감흥은 없었다.
기억에 남는 거라면, 당시 6살이던 사촌동생을 앉고 한라산 정상까지 등반했다는 거. 거의 죽음이었다. -_-;;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찬 <- 그때 에피소드

이번에 부모님과 같이 가는 제주도는 어떠려나. 산굼부리에 억새풀이 한창이던데.
시원한 가을바람이 우리를 기다릴지도.

3.
어머니 환갑 하니 그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던 봄이 생각난다.
어찌저찌하다 전산과에 입학한 나는 지금은 정말 한 시대의 대명사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진짜로 최신이었던 386컴퓨터를 집에 들여놓았다.
전산과라는 명목으로 좋은 컴퓨터를 사두었는데, 우습게도 대학내내 내가 그 컴퓨터로 프로그램을 짠 적은 한번도 없다.
유일하게 쓴 것은 문학회 문집을 위해서 편집용으로 아래한글을 쓰거나 시합평회 제출용으로 시를 끄적거린 기억밖에.
아무튼 컴퓨터를 들여놓은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컴퓨터 모니터와 본체에 커버를 씌워두셨다. 그냥 커버가 아니라 손수 만드신 커버였다.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에 들어갔으니 신경쓰신다고 정성스레 만드신 것이었는데, 철없던 나는 그냥 그게 답답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이딴 거 필요없다고 성을 냈다.
어머니는 아들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짜증을 내자, 실망한 눈빛으로 커버를 치워주셨다. 늘 받기만 하는 자식의 입장으로 당연한 행동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날따라 어머니의 섭섭한 눈빛이 왜 그렇게 오래 남아있는지.
난 지금도 때떄로 15년전 그날이 떠오른다.

나도 이제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 되고 보니 어머니에게 했던 투정이나 짜증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기억은 그래서 쉽게 지울 수 없나 보다.
 아이가 뜻대로 되지 않을때 나나 아내에게 짜증을 내는 모습을 보면 부모란 이렇게 아이가 기댈 수 있는 튼튼한 배경 그 자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통해 나는 일상속에서 어머니를 만난다.
 어디가서 눈칫밥이라도 먹는 아이들이 그렇게 짜증을 쉽게 낼 수 있을까. 물론 아이의 짜증을 다 받아주진 않는다. 특히 여러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집에서는 대체로 받아주는 편이다. 이런 딸이 중학생정도 되었을때 나와 마주앉아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줄지 고민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그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릴지 모른다.  
 
4.
한국에 있을때는 그래도 한달에 두어번 찾아뵐 수 있었고, 부모님댁에 찾아가서 특별히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그냥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다.
다시 일본으로 가면 어머니가 더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외국에 있다보면 때때로 부모님을 뵙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게 가장 답답한 일 중 하나다.

사실, 이번 생신을 맞이해서 어머니에게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말은 직접 쑥쓰러워서 못하겠지만, 사람은 가도 기록은 남는 법이니 이렇게 인터넷에서라도 남겨야겠다.

어머니, 생신 축하드리고, 감사드립니다.
오래 오래 행복하세요.

이번 60세 생신은 유치한 노래가사 처럼 '제주도의 푸른밤'하늘 아래서 아들들과 같이 보내시겠네요. 그 동안의 자식키우시던 피로가 제주도의 밤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렸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뭐 이 참에 나도 좀 쉬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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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아이,나의 흑백필름 l 2007/10/26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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