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오늘 '졸업증명서'를 발급받으러 학교에 갔다.
졸업한지 올해로 10년이 흘렀다.
학교에는 지난 몇년간 높을 빌딩이 들어서서
학교 밖 키가 낮은 동네와 공간을 단절시키고 있었다.

학력위조 괴담이 떠도는 요즘
영문 졸업증명서를 발급받고나자,
내이름 석자가 박힌 증명서가 낯설었다.

내가 졸업했다는 것을 자신있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버지가 내주신 수업료는 꼬박꼬박 납부했다는 점이다.
내가 F학점을 받았던, 수업을 빼먹고 낮술을 퍼먹었던 간에.

학교를 어떻게 다녔는지도 이제 가물가물하다.
새로 지어진 공학관 강의실 복도를 지나가면서
지루했던 수업과 무거웠던 전공서적이 생각났다.

2.
오늘 우연히 과 선후배 모임이 있었다.
요즘 말만은 그 IT가 전공인 사람들.
일본에 있다 보니 한 10년만에 보는 사람도 있었고, 5년만에 보는 사람도 있었다.
한때 같은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거나 학생회실 혹은 학교 근처 술집에서 술을 먹던 사이였는데, 그새 다들 결혼을 하고 아이도 있고, 몇몇은 미국에 가있다.

그리고 오늘 한 선배의 죽음을 들었다.
간암으로 지난 7월에 세상을 떠났다 한다.

처음에 그의 이름을 들었을때 얼굴이 생각이 안났다.
한참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니 순간 화르륵 영상이 떠올랐다.

드럼을 멋지게 치던,
인문대 노래패였던 선배였다.
눈 밑에 갈색 반점이 있었지만 요즘 말로 얼짱이고 키도 컸던 사람이었다.

어차피 졸업하고 얼굴 볼 수 있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불현듯 파고드는 그의 죽음 소식이 낯설다.

30대를 한창 통과하는 우리들.
20대 초반에 만난지 15년이 흘렀다.

영원할 거 같았던 그 시간도 거대한 세월의 블랙홀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죽음이란 거.
남겨진 사람들은 그럭저럭 일상을 수습하고 살아간다.
그리고 기억속에 그들은 영원히 살아있지만
상영되다 만 영화처럼 더이상 만날 수가 없어진다는 거.

빛바랜다는게 이런 것일까.

문득 그의 허스키하고 낯익은 목소리가 재생된다.

3.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난
내가 가진 것을 좀더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사실 가진게 별로 없다. -_-;;)

세상사
어쩌면 더 붙들어매려고 할 수록 더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시간도 사랑도 세월도

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길에서 만난 연인들 l 2007/08/25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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