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어제 처음으로 눈높이 선생님을 만났다.
그전에 한차례 다녀갔는데, 어제는 내가 집에 있을때 다녀간 것이다.

일주일에 1번 30분정도 채현이에게 한글하고 숫자놀이를 가르쳐 주러 온다.

어제 수업 하는 것을 듣고 있자니,
채현이가 한국말이 부쩍 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본에서는 부모에게 얻어듣는 게 전부였는데, 여기서는 어린이집에서도 다양한 또래로부터 한국어를 듣고, 선생님에게 듣고.

그전까지 채현이는 '나', '내'라는 표현을 못썼는데, 이제는 '내가..'어쩌고 저쩌고, 쓰기 시작했다.
일본어로도 わたし(와따시)란 말을 못써서 チェヒョンちゃん(채횬짱)...이렇게 말이 시작했는데,


2.
어제 수업하면서 동물을 지칭하는 놀이를 했는데,
개구리, 원숭이, 하마 등 하나하나 짚어 가다가 '악어'그림에 이르게 되었다.

채현이는 순간 '와니!!'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와니?' '와니가 뭐야?"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우리가 '와니'는 일본어로 '악어'란 뜻입니다. 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채현이는 악어 대신 와니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수업이 끝난다음, 강아지 이름인줄 알았다고..
이제 채현이에게 하루에 하나씩 일본어를 배워가야겠다고 농담반 이야기 했다.
그러자,
채현이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채현이..일본말, 잘 모.못해"

옛날에는 한국어를 쓰라고 해도 일본어만 쓰던 아이였는데, 한국에서는 도통 쓰려고 하지 않고, 쓰기 싫은가 보다. 그리고 상당부분 까먹은 상태다.

3.
요즘 보면 '아이'가 언제 일본어를 썼나 싶고, 딸아이가 모국어를 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도 까마득한 옛일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언어도 사랑 같은 것일까. 하나가 그 사람 영혼에 들어서면 다른 것은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딸아이는 점점 일본에서 생활한 흔적으로 지우고, 한국에서 전혀 무리없이 생활을 하고 있다.
일본에 있을때 걱정했던 한국어에 관한 다양한 '언어모델'은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다 알아' '어서 자' 등 어른들도 깜짝 놀라는 말들을 내뱉곤 한다. 뭐랄까 그런 말들을 들으면, 일본어로 들을때와 다르게 정서의 공감대를 느끼게 된다.

한가지 걱정되는 건, 내년말에 다시 일본에 간다면 그때는 다시 어눌한 일본어로 유치원이든 초등학교 생활을 시작해야된다는 것이다. 두달만에 우습게도 일본에 있을때와 정반대의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에 있는 동안 특별히 아이에게 일본어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 아이가 하기 싫어하고, 자신없어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을 둘러싼 환경이 바뀌면 아이는 또 언제 그랬듯이 자연스럽게 동화되어갈 것이다. 부모가 해줄 역할은 단지 지켜보고, 믿고, 격려해주는 것일 뿐.

이런 이야기를 혼잣말로 내뱉어도 채현이는 이렇게 응수할 것이다.

'다 안다니까.....'

오늘도 딸래미는 어린이집에 '신나라'하고 놀러갔다. 어쩌면 즐거운 한글세상에 푹 빠진 아이를 보는 내가 더 즐거운 건 아닐까.
그리고 내년일은 내년에 걱정하면 된다. 안 그래? 채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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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아이,나의 흑백필름 l 2006/11/08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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