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Michael Garmash - sweet-morning
1.
바야흐로 블로그 시대다
어떤 이슈에서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블로그에서 의견를 내고 있다.
블로그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게시판에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넘쳐난다.

그뿐이랴. 사회적으로 자신의 메세지를 증폭시킬 도구가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가 4만이라고 하고,
포털사이트인 다음에도 1만 블로그 기자가 뛰고 있고, 누구나 참여가 가능하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자기를 드러내는 통로가 밤하늘의 신성처럼 늘어난 것이다.

오래 붙들고 생각하기 보다 비주얼이 점령한 이 시대에,
역설적으로 글쓰기를 잘 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늘었다.

그러나 그것의 기반이 되는 출판시장은 불황이라고 하고
때때로 좋은 글은 읽히는게 아니라 스크랩되어서 박제가 되거나 무한복제가 되거나.

육감적인 몸매와 강렬한 눈매의 이미지가 그림자처럼 거대한 도시를 덮고
그 사이를 가득 매운 수많은 소음과 개인들은 MP3로 귀를 막고 음악을 흘려보낸다.
핸드폰에서도 연일 문자를 날리며 비주얼보다 언어가 우선인듯 얼핏 보이나,
실은 이모티콘이 빛의 속도로 날아다는 것일 뿐.

모든 문화예술의 기본이라는 문학이란, 시란 이 시대에 어떤 의미일까.

2.
그의 이름은 성진 이었다.
나랑 학교는 달랐지만, 문학회활동을 하다가 만난 선배다.
그날도 나는 서울 교대역 근처에서, 술을 마셨다.
나는 졸업하고 프로그래머가 되었지만, 형은 여전히 시인의 길을 고수하고 있었다.
별처럼 빛나는 시인들은 많았지만 역시 학생때는 명명가의 글보다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솜씨좋은이의 글이 더 와닿기 마련이다.  
그는 거나하게 취하자 비장하게 시를 쓰면서 해서는 안되는 일을 이야기했다.

"너 시를 쓰면서 가장 하지 말아야할 것이 뭔지 알아?"
"뭔데요?"
"어설픈 화해."
시라는 것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사람이 들으면,
나랑 성진이형이 이야기하는 것은 아마도 호랑이와 사자 중 누가 센가 밤새 입씨름하는 것과 비슷한 쓰잘데기 없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기 비하"
시를 쓰지 않은지 2년인가 되었던 시점이라, 그의 고민이 곧 내 고민이 될 수는 없었지만
그가 제기한 문제의식에는 동감했다.

어설픈 화해는 단지 시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시인나부랭이들이 지어내는 말들(예를 들면 비포선라이즈에 나오는 강가의 시인. 멋진 싯구지만 이미 정해진 문구를 사람에 따라 바꿔가며 만들어낸다)이 먹고 사는것과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시인들은 나름대로 세계를 자기식으로 인식하고 수납하며 그 안에서 치열한 논리로 세상과 싸운다. 언어의 한계는 곧 인식의 한계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만들어놓은 창을 때때로 우리는 차용해 쓰기 때문이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그를 본 것은.
어찌하다 보니, 연락을 못하게 되었고, 한참이 지난 후에는 아예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3.
다시 글쓰기로 돌아와서...

모든 것은 흉내와 훔치기를 필요로 한다.
엔지니어는 신기술을, 화가에게는 위대한 작가의 구도와 빛을,만화가에게는 깔끔한 연출과 적절한 위트를
다들 훔쳐서 자기것으로 만들어야만 실력이 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좋은 문장가의 글을 읽고 알게 모르게 삼림욕하듯 들여마셔보는 노력. 시인이 풀어내는 감정의 선율을 흡수해보려는 노력, 그들의 해석한 세계를 복사해보거나, 언어로 이미지를 나포해보는 노력, 이런 흉내 없이 좋은 글은 나오기 힘들다. 글이야말로 글쓴이 머릿속이라는 방을 비추는 조명이 아니던가. 인풋이 없으면 아웃풋도 없는 법.

자리에 누웠다가 '어설픈 타협'에 대한 단어가 불현듯 떠올라 글을 쓰는 지금,
성진형은 나를 문학에 대한 기억속으로 밀어넣는다.  

4.
제대로 된 시집이라고는 홀로서기 두권인가(것도 형이 사온것이 한권) 밖에 없는 내가
글쓰기 위해서 문학회에 들어간건 아니었다. 그저 독서의 폭을 조금 넓히고 싶었다.

가끔씩 있던 '시' 품평회 시간에 대학 새내기인 내가, 선배들의 심오하지만 대체 알수 없는 시 평가에 그것을 해석하기 무리였다. 한가지 즐거움이라면 누가 말빨의 주도권을 주고 침을 튀기는가 구경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평은 분명 한글을 깨친 나도(이건 보증함) 알아들을 수 없는, 지금으로 따지자면 십년은 앞선 진정한 의미의 '외계어'였고, 그때만큼은 중세 신학자보다 세상의 모든 섭리를 관장하는 안목이 있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다들 때맞춰 아무일 없다는듯 졸업을 했고 바람빠진 풍선처럼 평범한 인생을 보내고 있지만 그때만큼은 정말이지 '시'라는 형태로 적힌 활자를 종이와 분리해서 씹어먹고야 말겠다는 마법사들로 보였다.

합평회가 좋았던 건 가끔 학교 뒷산에 가서 커다란 솥을 가져가서 닭을 끓이고 소주 됫병을 돌려내던 술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머리 위로는 파아란 하늘이 떠있고, 어깨옆으로는 7월의 나뭇잎이 그늘을 드리우는 곳에서 사람수대로 복사된 A4용지를 들고 '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설령 그 내용이 모순된 세상을 깨부수겠다는 불타는 다짐이었든, 머리통이 큰만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되었다는 가족사였든 분위기는 들뜨기 마련이다. 뭐 그건 어떤 의미에서 본격적인 의식화 사업에 들어가기 전에 문학회 선배들이 마련한 맛깔나는 밑반찬이었지만, 밑반찬을 맛있게 받아 먹고 나니 실은 원래 그들이 가진 것도 밑반찬밖에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걸 알았을때는 이미 선배들은 사라졌고 반찬과 밥은 내가 마련해서 후배들을 먹여야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원래 세상에서 중요한 진리는 각자 '알아서' 하는 거다.)

내가 최고참 선배가 된 후 나 대신 후배들의 시를 봐 줄 사람이 없을때, 나도 거창하게 후배들의 시를 거의 고쳐쓰듯이 훈계를 했지만, 나 조차도 정확히 시란 무엇인가 알고 말했다고 할 수 없다. 선배들이 그러했듯이. 하긴 시를 써오는 놈들도 자기가 대체 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모르기도 했고, 실은 할 이야기가 없는데 애매모호함으로 포장해서 시라고 내놓기도 했으니 할말 다했다. 그런건 '시적허용'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모든게 허용이 되었다.
하긴 부모님 돈으로 대학을 편하게 다니는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시 , 혹은 소설이라는 것을 붙들고 까닭없이 심각해져야할 이유는 도대체 없는 것이다. 그때는 그걸 인정할 수 없었지만, 뭐 그렇다. 차라리 길거리 나가서 헌팅하는게 인생공부에 더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후배들이 가끔 나보고 문학의 정의가 뭐냐고 물어보면
난....
"그건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창을 만드는 것이지
  창의 형태에 따라 세상은 그만큼만 편집되어서 보이잖아?"
라고 떠벌여댔다.

4.
만화가 여러개의 이미지를 다양하게 쪼개서 자신의 감성으로 재배치하는 작업이라고 할때,
애니메이션은 1,2초당 무엇을 어떻게 움직이게 하고 보여줄 것인가 하는 흐름의 세계다.
120분이라는 할당된 시간속에 관객을 얼만큼 쉬지 않게 눈을 묶어둘 수 있는가 하는 머리싸움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문학은? 그것의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다.

무엇을 보았는가
무엇을 느끼는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

정보의 홍수, 정보의 바다라는 인터넷 시대에 정작 더 강화되어야할 것은
세련된 이미지와 넘쳐나는 가쉽거리가 아니라,
무엇은 보여주고 무엇은 상상의 공간에 남겨둬야 하는지
무엇은 격정적으로 토로하고 무엇은 절제해야는지,
판단하게 할 수 있는 문학적 신호등이 아닐까.

진짜 글쓰기의 원동력은
전기적 장치에 의해 한시적으로 목숨을 연장하는 모니터속에 존재하지 않고,
긴 흐름을 느낄 수 없는 토막난 글 조각인 스크랩에도 담길 수 없고
아직까지는 유효한 아날로그 속, 손으로 잡으면 펄프의 향기가 느껴지는 책속의 활자와
만날때 생기는 공기속에 있다고 믿는다.

5.
글과 이미지의 대책없는 줄타기를 하는 이때
성진이형은 6년후인 오늘에도
여전히 '어설픈 화해'를 용서하지 못한채
세상을 읽고 있을까.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을 문득 들여다보고 싶다.

무슨 색일까.

적어도 그땐 알콜이 잔뜩 묻은 그의 '시'론이
몇백억짜리 스케일의 블록버스터 영화보다 감동적이었고,
의미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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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길에서 만난 연인들 l 2006/07/15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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