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며칠전
애니메이션 TV시리즈가 중요한 이유 란 글을 다음 블로그 기사로 보냈다.
댓글이 177개 붙었는데,일명 만화/애니를 사랑하는 오덕후(오타쿠)들의 총출동 (?) 한셈 ㅎㅎ..

아무튼 그 중에 약간 논란이 된 것이 한국은 손재주가 좋아서 일본애니의 대부분을
그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창작'과 '하청'의 차이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기로 하자.


2.
현재 한국에서 제작하는 일본애니의 대부분은 '창작'이 아니다.
동화및 채색 등 단순 하청일 뿐이다.

애니메이션 제작 단계를 보면,
기획 -> 스토리(각색) -> 콘티 -> 레이아웃 -> 원화 -> 동화 -> 채색 -> 촬영
이런 과정을 거친다.

흔히 프리프러덕션이란 기획 부터 콘티 까지이고,
실제 텔레비젼 화면에 캐릭터 배치와 배경이 정해지는 것은 레이아웃 시점이다.

그리고 원화는 레이아웃에서 결정된 위치에서 캐릭터의 움직임을 잡는 것이다.

쉬운말로 주먹으로 사람을 때린다고 했을때 주먹을 든 것과 때린 후의 동작을 결정하는 것은
원화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연결해주는게 동화, 색을 입히는게 것이 채색이다.

즉 동화/채색은 단순작업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한국이 뛰어나다는 소리는 결국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기능을 잘 한다는 것이지, 애니메이션을 잘 만든다는 소리는 절대 아니다. 얼굴 이쁜 미인이 꼭 명배우가 아니듯이.




  그림 콘티. 화면에서 캐릭터 위치와 대사, 필요한 시간등 각종 지시사항이 담겨있다.

                  콘티에 따라 레이아웃을 그림, 검은 외곽선이 실제 TV 브라운관이라고 가정 그림.

3.
90년대 중반 한국애니가 세계 3대 제작국중 하나라고 방송에서 침을 튀기면서 떠들었는데(침이 브라운관을 뚫고 나옴, 하도 어이가 없어서), 사실 그 실체는 정해진 캐릭터와 스토리안에서 원화를 실제 단순 완성하는 일 뿐이다.

일본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것인데,
사실 일본은 한국이 없으면 애니메이션 제작이 불가능한 구조다.
2-30년을 그런 시스템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어떻게 불가능한가.
보통 레이아웃을 그려서 연출쪽으로 보내고 나면 짧게는 3-4일, 길게는 일주일정도 작화감독의 손을 거쳐서 원화 제작이 가능하도록 수정된 그림과 함께 원화 애니메이터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스케쥴이 빡빡해서 이게 늦어지면 결국 가는 곳이 한국이다. 그것도 주로 목,금 발송, 회수는 다음주 월요일.

한국 애니메이터는 주말에 쉬지 말라는 소리인가.
그러나 창작이 지극히(?) 드문 한국에서는 그것이라도 받아서 일을 한다. 이건 현재 시스템이 이렇게 되어있어서, 회사 운영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라도 돌려야한다는 뜻이다.

만약 내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시작했다면 과연 서른이 넘어서도 버틸 수 있었을까. 일본도 저임금이지만, 한국에서는 저임금 뿐 아니라, 고된 스케쥴과 주요파트가 아닌 단순작업으로 대부분 사람들이 작업을 하다가 지쳐간다.

그러니, 이런 부분 가지고, 세계 3대 애니 제작국이라는 이야기는 하지 말자. 나이키 신발을 잘 만든다고 해서 그 공장이 세계 1류 공장은 아니지 않나.


4.
이왕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지 크게 두가지로 나눠보면

흔히 이야기 되는 것은 70년대 이후 주요 제작자들이 창작 대신 하청으로 애니메이션이란 것을 돈벌이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쪽 일은 이익도 많이 남아서 적정한 수준의 애니메이터만 고용하면 빌딩 올리는 것은 예사였다는게 업계쪽 이야기.

두번째는 방송국이 애니메이션 제작에 투자하기 보다 싸게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해다가, 방영하면서 시청자를 현혹시킨 것도 그 주요한 이유중 하나이겠다. '미래소년 코난' '요술공주 밍키' 등등 80년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품을 일제 애니메이션이 아닌 무국적 애니메이션을 포장, 방영한 것이 그것이다.

여기서 나는 회사와 주요제작자, 그리고 방송국만 탓하고 싶다. 애니메이션 일을 하다가 그만둔 무수한 창작자는 어떤 의미에서는 희생자이기 때문. (일만 하고 돈을 못받는 경우가 허다한게 사실이었으니)

그 중에서 제작자들의 문제를 따지고 들지 않을 수 없다. 방송국의 횡포는 한일 양국이 똑같으니까 그렇다 치고, 8-90년대 한국을 주름잡은 주요 제작자들이 과연 진짜 창작의 의지가 있었는지 심각한 회의가 든다. 장사가 주로 되는 하청 애니메이션으로 초기 자본을 축적한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치자.
문제는 그 후에 남은 이익으로 새로운 작품에 힘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빌딩을 사거나 짓고, 규모를 확장해서 코스닥에 올린후 회사를 팔아버리는 행태를 벌였다는 것. (모든 업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나, 중소규모 사장들이 이런 것을 모범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꽤 있다.)

여기서 피해를 보는 것은 당연히 애니메이터들이다. 그러니 누가 꿈을 가지고 계속 할 수 있을까. 아무런 사회보험도 되지 않는 일용직 노동자와 다를바 없는 처우. 나이들면 당연히 전업할 수 밖에 없고, 인력이 축적되지 않으니 연출, 콘티, 레이아웃등 더 높은 수준이 기술을 기대하기 힘들다.

영혼을 담아야할 창작의 열정 대신, 애니를 돈으로 환산해서 처분한 현재 제작체계에 제대로된 작품이 나오는 것을 바란다는 것은, 복권도 안사고 로또 당첨을 바라는 것과 똑같다.  

5.
한때 한겨레 문화센테 일본 아니메 망가 탐방 가이드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한국의 젊은 감독, 제작자도 종종 만나기도 했고, 한국에 직접 가서 실제 열정을 가지고 일하시는 분들과 한국 애니 현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처음 시작은 한국 애니의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나중에는 '성토'대회로 변질.

뭐 하루이틀 일인가.
그래서 사실 어떻게 어디서부터 문제를 풀어야하는지 아직 답은 안나온다. 그리고 세상이, 시스템이 어쩌니 저쩌지 떠들기도 입아프다.(해결될 기미는 더 안보이지만 -_-)

그럼에도, 앞으로 한국 애니를, 만화를 위해서 해야할 일이 있다면, 어쩌겠나. 창작자들이 좋은 작품을 어떻게 해서든 만드는 수 밖에. 원더풀 데이즈가 비록 실패를 했지만,그때 사람들이 보냈던 성원을 잊을 수 없다.(난 관계자는 아니지만 인터넷상에서 보여준 성원 등)
한국 애니를 사랑하는 분들은 여전히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다.

'제발 제대로 된 작품하나 만들어줘. 그럼 우리가 열심히 봐줄께'
-> 그러나 공유,복제될 가능성이 다분-_-;;

그래도 여기서 한마디!
"창작의 깃발을 들었으니, 쓰러지지 말자" (이거 데모할때 구호인데 -_-)


* 다음번은 만화와 애니와 관계에 대해서, 그 후는 일본 애니의 비용절감에 대해서 시간되면 떠들게요. 강연회때 부족했던 이야기 요기서 떠들어보아요. 혹시 도움 되실런가 몰겠네요. 애니 쪽은 하다보니 할 이야기가 점점 늘어나네 ㅜ.ㅜ

  '뭐 잡담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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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저패니메이션, 길을 묻다 l 2006/06/08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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