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2001년 봄.


 내가 처음 교또에서 토쿄로 올라왔을때, 난 처가 다닐 수 있는 일본어학교를 구하고 있었다. 처는 당시에 한국에 있었고, 나로 인해 느닷없는 일본행으로 나처럼 미리 일본어 공부를 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따로 비자가격까지 포함된 '일본어학교'는 필요없었고, '가족비자'를 가지고 있는 이상 되도록이면 저렴한 '일본어학교'가 필요했다.


 토쿄에 와서 가장 처음 한것은, 내 오랜 친구의 누님이 계시는 '한국대사관'으로 찾아가서 점심 한끼 얻어먹는 일이었다. (사실 가서 얻어먹은 점심값보다 차비가 더 나왔음 -_-;;)




 그때 나보다 일본생활을 오래한 그 누님에게 비자가 필요없는 싸고 잘 가르치는 일본어 학교를 혹시 아느냐고 여쭤보았다. 그 누님은 잘 모른다고 했고,  대신 그때 먹었던 한식당 여주인에게 (혹은 점원이었는지 모른다) 내 이야기를 건냈다.




 "혹시 싼 일본어학교 아세요?"


  누님은 그 가게 단골이었던 모양이다.


  가게 주인되시는 분은 나를 한번 훑어보더니


 "아! 일본에 막 왔구나"


 하며 불쌍한 눈초리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나서 대답이 더 가관...


 "글쎄. 모르겠는데, 찾아보면 있지 않을까."




  뭐지? 자기도 모르면서, 처량하다는 듯 쳐다보는 저 눈빛은?


 


 내게 필요한건 막 일본에 온 사람에 대한 싸구려 동정심이 아니라, 내 와이프에게 필요한 정보였을 뿐이었는데, 어쨌거나 그때 경험은 매우 불쾌했다. 하긴 그녀에겐 내가 이미 한국에서 '일본어'공부를 하고 왔고, 또 이미 '어학교'를 마쳤으며, 앞으로 '유학비자'로 학교를 다닌다는 정보따윈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나 같이 우연히 마주치게 된 '막 물건너온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가 먼저 자리잡은 것에 대해서 안도하고, 향후 생활에 대해 선배랍시고 한마디 충고나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2.


 5년이 흘렀다.




 나도 가끔 이곳 저곳 자기의 일본 이야기를 올리는 유학생 블로그를 들르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그들는 적어도 나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4년이상 늦게 일본에 온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들에게 배울 게 없는 건 아니다.


 그들의 경험은 그 시간대에 맞게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다.


 게다가 내가 그들이 하는 경험을 다 한 것도 아니지 않는가.


 따라서 나는 아무리 유치하고 단순한 글이라도 설령 그것이 틀린것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의견에 섣불리 개입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틀린 것이라면 저절로 그들은 자기의 오류를 고쳐나갈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 2001년 도쿄에 첫발을 내딛던 그날이 생각난다. 길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디든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배어있기 마련이므로...




3.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우주가 있다.




 산에서 사는 사람에게 해는 산에서 떠서, 산에서 지고,


 바다에서 사는 사람에게 해는 바다에서 떠서 바다에서 진다.




 이 두가지 진실은 서로 그것을 경험한 자에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구체적 진실이다.


 아무리 지구가 태양 주위를 공전 한다 해도, 이런 구체적 경험을 통하지 않고, 전체적인 진실로 나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외국 생활도 그렇다.


 언어문제만 해도, 일본에서 5 - 10년이상 산 사람끼리 만나면 서로 누가 그 나라 말을 잘하네, 못하네 이런 이야기는 하지도 않는다. 왜냐 그건 당연한 거니까.




 또 그 나라가 이렇네, 저렇네 하는 것도 다 자기가 가진 우주속에서의 경험이라, 그것은 맞고 틀리고의 영역이 아니라 저마다가 가지고 있는 진실이다.




4.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일본에 대해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고,


 아직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를 가지고 '기초 일본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는,


 가끔 생각한다.




 내가 사람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난 그저 내 이야기를 할 뿐이다.


 내가 한국에 있을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물음에 대하여,


 혹은 그 어떤 이에게도 물을 수 없었던 물음에 대하여


 지난 몇년간 지나오면서 정리해낸 답변을 단지 풀어낼 뿐이다.


 이것을 사람들이 안다고 해서 갑자기 그 분들의 언어능력이 일취월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하실 분도 계시겠죠^^)




 단 내가 바라는 것은 딱 한가지...




 이 연재로 인해,


 일본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희망'이


 끊어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5.


 희망 말고 세상을 밀고가는 힘이 또 있을까.




'가르친다는 것, 그것은 다만 희망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Posted by 당그니
일본생활 이모저모 l 2006/04/07 01:47

1  ... 754 755 756 757 758 759 760 761 762  ... 1002 
블로그 이미지 일본어 기초는 패턴으로 확실하게!!by 당그니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002)
알림 및 공지 (11)
인터뷰 및 기사 (10)
만화 일본표류기 (12)
일본! 이것이 다르다! (80)
일본은 최근 이슈는? (147)
Photo Japan (60)
저패니메이션, 길을 묻다 (31)
일본생활 이모저모 (68)
블로그속 블로그이야기 (49)
만물상 (27)
당그니 이바구 (231)
인생의 갈림길에서 (120)
당그니 일본어 교실 (86)
당그니 갤러리 (56)
공감가는 이야기 (14)
고물상 (0)
website counter

달력

«   2009/0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Daum 블로거뉴스
Daum 블로거뉴스 베스트 블로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