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제
보러간 집을 다시 가계약을 하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없이 4층까지 걸어올라가야하는 흠이 있었지만
'정남향'에다가 곳곳에 창문이 있어서 너무 밝았던게 마음을 흔들었다.
주위도 조용하고, 무엇보다 지금보다 갈아타는게 한번 줄어든다는 이점이 있어서,
이사를 결정하고 말았는데....
지금 사는 집에 이사온지 2년하고 3개월.
일본에 와서 벌써 이사하는게 3번째다 -_-;;
생각해보면 1년 반에 한번씩은 이사를 하게 되었던 거 같다.
이러다가 진짜 '힛꼬시빔보오'가 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힛꼬시 빔보오(引越し貧乏)'란 이사(힛꼬시)를 자주해서 빔보(가난한사람)가 된다는 뜻으로
물가 비싼 일본에서는 되도록이면 이사를 하지 말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2.
2000년 가을, 겨울
지금 연재하는 만화속에서는 재미있게(?) 기숙사생활이 그려지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자기 살림이 하나도 없고 친구 하나 쉽게 데려와서 재울 수 없는 기숙사가 싫었다.
무엇보다 불안한 미래가 싫었고, 혼자사는 생활이 싫었다.
2001년 봄
도쿄에 올라와서 '하나코가네이'란 곳에 처음으로 장만한 방한칸에 부억 하나인 집 - (월세6만엔)
한국에서 마련한 전세집을 겨우 한달 살고 떠나온 내 처량한(?) 신세를 떠올리면
본격적인 신혼생활을 시작한 집으로, 피붙이 하나 없는 토쿄에
자기 몸을 편히 누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감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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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코가네이'에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건 집에서 조금 걸어나가면 만날수 있는 자전거 도로. 산책하거나 조깅하기에는 일품. |
것도 잠시, 결정적으로 2층 목조건물에 1층.
베란다 앞에 다른 집이 턱 하니 가로막고 있어, 쪼개진 햇살로 간신히 빨래를 말려야하는 생활이 지속되었다. 난 그때 햇살이라도 따듯하게 받고 싶었다.
하늘이 공평하게 내려준 선물을 이렇게 월세값에 따라 다르게 나눠 가져야한다니..제길.
물론 눈앞에 탁 트인 경치 같은 것은 생각도 못할 팔자. 어디나 그렇지만, 일본 집은 햇빛이 잘 드냐 안 드냐에 따라 월세가 또 올라간다.
그리고 목조 1층이다 보니 바닥에서 올라오는 한기는 가히 방 공기를 절반으로 나누는 역할도 했다. 에어콘이 돌아가는 방 윗부분과 아래에서 밀려드는 찬공기의 명백한 대립전선.....아 싫다.
결국 아이가 태어날때 즈음 다른데로 옮겨야했다.
무엇보다 일본 목조건물이 겉은 번지르르 하지만 사실은 판잣집과 다름없는 소음과 추위을 자랑하므로, 특히 아이의 울음소리를 동네방네 광고할 수는 없었다. (옆방 핸드폰 진동이 자기방에 들린다면 할말 다 한거징...)
2002년 여름
만삭인 아내와 함께 '아야세'란 곳으로 이사를 했다.
좁은 부억겸 거실과 방 두개가 딸린 '철근 콘크리트 맨션 4층'!!
이름하여 '카네코 맨션'
일본에서는 민간 주택을 구할때 드는 비용이 사례금 1개월치, 보증금 2개월치, 중개료 1개월치 등 보통 4배의 금액 기본적으로 들어간다. 게다가 이 보증금은 나올때 그냥 돌려받는게 아니라, 청소비나 벽지등 파손된 부분을 부담시키므로 나중에 별로 돌아오는 것도 없다.
즉 한 4-50만엔이 이사비용과 함께 날아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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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 문제의 '카네코맨션' 집앞에 도로가 몇개인지 함 세보셈. 쩌 위에 있는게 수도고속도로 ㅜ.ㅜ |
유학생에게 이사는 사실 어느정도의 결단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없는 살림에 8만 2천엔이라는 거금(?)을 월세로 지불한 이유는 주위 눈치 안보고 아이를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곳은 그야말로 남 눈치 보지 않는 맨션이었는데, 소리를 맘껏 질러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그 이유는 정작 다른데 있었다.
바로 맨션옆에 고가도로, 수도고속도로등 도로가 3개나 있었기 때문 -_-;;
우리가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자동차 소리에 묻혀버린다. 그러니 누가 뭐라 그러겠는가. 들리지를 않는데. 집을 구할때 일요일날 본게 화근이었다. 한산한 느낌을 주는 도로는 월요일이 되자 길게 늘어선 승용차로 만원이었고, 심야에 마후라 떼고 달리는 개쉑들의 오토바이 소리와 짐을 실고 거칠게 내달리는 트럭때문에 아주 죽을 지경이었다. 가끔은 고가도로 높이 제한을 무시하고 달리던 트럭이 고가 아래쪽에 짐칸을 부딫혀 심한(?) 추돌사고를 연상시키는 소음까지 덤으로 주곤 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ㅜ.ㅜ
물론 '하나코가네이'집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아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는게 선물이기는 했다.
그 멋진 하늘도 북쪽으로 난 창에 달려 있었고, 자동차 매음에 뒤섞인 공기와 함께 맛봐야한다는게 좀 떨떠름하긴 했지만...
그러나 소음에 이길 장사는 없었다. 더운 여름날 베란다 문을 열어놓고는 대화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집. 우리가 이 맨션으로 오면서 '더 이상의 이사는 없다'는 다짐도 역시 1년 반만에 허물어졌다. 교통이 불편하더라도 인간적으로 살자. 게다가 방은 훨씬 더 넓고, 월세는 더 싼 곳으로 가자는 처의 제안.
2003년 겨울
회사사람들을 다 동원해서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흔히 '공단'주택으로 불리는 집으로 사례비, 갱신료,중개료가 일체 필요없는 곳이다.
단시 '보증금'만 월세의 3개월만 내면 되는 곳. 물론 이곳은 수입이 어느정도 되는 직장인이어야 가능하다. '아야세'에서 한정거장 떨어진 곳으로, 왕복전철이 12분에 한번씩 오는 곳으로 교통은 훨씬 불편했지만 무엇보다 큼직큼직한 방과 마루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월세도 7만 8천엔으로 더 쌌다.
이곳은 서향이었고, 약간 큰 도로가 집 앞에 있긴 하지만 10층이다 보니 그리 소음이 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단지내 공원도 있어 채현이가 뛰놀기에는 딱 적합한 곳이었다. 주위에 가려진 곳이 없어서 경치하나는 끝내줬다. 멀리 라이온스 맨션만 없다면, 맑은 겨울날 후지산도 보일 정도였다.
일본와서 처음으로 2년 넘게 산 곳. 이곳에 이사하면서 난 생활의 안정이 무엇인지 맛보았던거 같다. 그런 이곳 생활도 다시 2년하고도 3개월을 넘기면서 마감을 해야할것 같다.
아이가 커가면서 별도의 방을 줘야할것도 같고, 또 나와 처가 집에서 하는 '작업'때문에 별도의 사무공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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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 앞 산책로, 교통은 다소 불편했지만, 벚꽃이 피면 산책하기 그만이었던 곳. 이제 이것도 접을때가 되었나 부다.. |
'카네코 맨션'에서 이곳 '단지'로 이사하면서 진짜 도원결의처럼 이야기했던
'더 이상의 이사는 없다'는 이렇게 또 허물어지고 말았다.
3.
전철은 다시 한정거장 가까워진 치요다선 종점 '아야세' 근처.
비싼 월세지만 큰 맘 먹고 방이 3개인 곳으로 가기로 했다.
한번도 남향에 살아본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처음 살게되는 정남향 집.
곳곳에 창문이 있어서, 해가 떠있는 동안은 화사한 온기가 머물 수 있는 집.
집앞에 큰 도로가 없어서 소음도 없이 조용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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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네코 맨션'에서 콩알만하던 딸래미는 요즘 말처럼 뛰어 다닌다 -_-;; |
무엇보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자기 공간을 따로 마련해 줄 수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면 침대가 딸린 책상을 사주려 한다.
이번에 이사를 하면 이제 일본생활에서 더 이상의 이사는 진짜 없을까.
채현이에게 자기 방이 생기면 그 동안 자기 공간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면서 어지럽히던 일이 없어질까.
이번 이사를 끝으로, 다음번의 이사는 한국으로 할 수 있을까.
어제
가계약을 하고, 하루종일 앓았다.
그 꿈속에서 나는
일본와서 처음으로 다녔던 교또 일본어학교의 붉은 벽돌위에 드리워진
눈부시게 파아란 하늘을 보았다.
ⓒ 당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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