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 John Atkinson Grimshaw WinterMoonlight


 


 


 


 


 


 


 


 


 


 


 


 


 


 


 


 


 


 


 


 


1.


 잠이 안온다. 그럼 잠을 어제 많이 잤느냐.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잠이 부족한 상태다. 그런데도 안온다. 컴퓨터를 몇번 껐다 켜기를 반복한다. 다시 자리에 눕는다. 불현듯 무언가 쓰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힌다. 이럴때는 자판을 두드려야 한다. 밤의 정적은 상념을 부른다. 머릿속을 떠돌아다니는 상념은 정착할 곳을 필요로한다. 그게 글이 된다.


 


2.


 나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글에서 몇번 언급했듯이 단지 책을 읽고 싶어서 들어갔던 문학회. 선배들은 나에게 너는 글 쓸 타입이 아니라고 몇번이고 낙인을 찍었다. 게다가 전공도 전산이다보니 그러려니 했다. (졸업하고 컴퓨터 회사에 취직하니 이번에는 나보고 프로그래머 타입이 아니라나...난 뭐하는 타입일까)


 한때 국문과 창작론 수업을 들었다. 그때도 그랬다. 담당교수라는 인간이 '문학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이러면서 어떤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하는 것이라고 떠벌여댔다. 그때 소설을 하나 써내는게 숙제였는데, 나는 내 소개팅 경험을 약간의 반전을 섞어서 제출했다.


 그렇게 제출한 소설은 이름을 모두 지우고 제본을 해서 익명속에서 평가를 갖는다. 웃긴것은 제본이 다 된후 내 작품에만 이름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 교수는 미안하다고 그러면서도 소설과 실화는 다르다고 면박을 줬다. 순간 강의실은 개그콘서트가 되었다. 속으로 씨바, 이름이나 지우고 평을 하던가. 나는 작품을 평가받기 위해서 그 수업을 들었지, 개쪽 당하려고 들은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 수업이 끝난다음 같은 수업을 듣는 어떤 여학생이 너무 재미있게 봤다고 해서 걸레같은 기분이 조금은 풀렸다.


  그때 생각했다.


 '독자는 위대하다'


 


3.


 오마이 블로그가 어제 하루 서비스가 되지 않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났다. 모처럼만에 찾아온 휴가다. 매일 매일 무언가를 올리는 작업은 대단한 정력을 필요로 하는 셈이어서 에라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서비스가 중지되자 느닷없이 글을 올리고 싶어졌다. 몇시간만에 금단현상이 찾아왔다. 인간만큼 모순적이고 예측불가능한 존재가 있을까. 나도 모르게 힘들고 지겨워하면서도 중독이 되어 있는 것이다.


 중독. 무서운 놈이다.


 문학회시절. 하루도 술을 마시지 않고 집에 가면 그날은 비문학적(?)인 날이라고 생각했다. 문학적인 날과 비문학적인 날의 차이는 뭐냐. 세상의 온갖 논리와 모순들을 가차없이 소주잔을 들이부으며 재단했냐 안했냐의 차이다. 그 말빨에 제대로 남아나는게 없을 정도로 씹어대야된다. 즉 쉬운말로 술먹고 맛갔냐 안갔냐의 차이다. 습관은 그래서 무섭다. 그렇게 안하면 마음의 안정이 안된다. 그것이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라도 그렇게 인간은 생겨먹었다.


 


 일본에 와서, 담배도 끊었고, 술도 거의 안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외로웠다. 단절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매일 사람들과 어울려서 뭔가 씹어대면서 살던 날들이 시간의 안개속으로 사라지고 나니, 어느새 내 몸도 평일저녁은 물론이고,주말에 아무도 만나지 않아도 멀쩡했다. 가끔 미친거 아이가 이렇게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어쩌냐 몸이 익숙해졌다는데. 어쩌다 맥주 두캔정도만 마시면 이제 머리가 아파진다.


 습관은 따라서 그 자체가 인생이다.


 


4.


 다시 글쓰기로 돌아와서.


 창작론 수업은 그래서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열받은 것은 그 시덥잖은 교수의 멍멍이소리보다 무슨 국문과라고 하는 인간들이 쓴 소설 내용이 대부분 자살과 어두운 기억 투성이라는 데 있었다. 철학박사 학위를 한 300개정도는 딴 정도의 분위기를 풍기는 그들이었다. 그들의 소설속 주인공은 엄청나게 근엄했고, 진지했으며, 그들의 어깨에는 지구라는 별 다섯개정도의 무게를 걸려 있었다. 한마디로 개폼 잡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런 식이 아니면 소설이 아니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수업이 끝난 뒤 나는 버림받은 소설을 들고 동아리를 찾아갔다. 선배에게 평을 부탁했다. 그랬더니 내가 쓴 소설을 동아리 선배는 재미있게 읽으면서도'너는 안돼' 이렇게 다시한번 낙인을 찍었다.


 그때 중얼거렸다. 나는 안되는 군. 하긴 짜라투스트라도 그렇게 말했을거다.


 


5.


 버림받은 단편을 읽고나서 그 선배가 훈계하듯 권한 소설이 하루키 단편소설이다. 그날 하루키 소설을 사서 읽었다. 읽다보니 재미는 있었지만, 맥주마시면서 씹는 팝콘과 다를바 없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팝콘. 그냥 즐기란다. 하루키의 거창하면서도 시시껄렁한 일상과 나의 대책없은 일상이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은데....한때 하루키에서 허우적거렸다. 하루키의 바람같은 글에 나도 스며들고 싶었지만, 도저히 나의 딱딱한 대갈통 자체부터가 그의 세계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때려쳤다. 대신 진짜 맥주와 팝콘을 더 많이 먹었을 뿐.


 그때 알게된 진리


 하루키를 알게되면 아랫배가 나온다.


 


6.


 내 글쓰기가 갑자기 발전했다. 물론 실연을 당한 뒤였다. 동아리 회장을 맡아서 그 책임감때문에 하루 하루를 무거운 돌이 지니고 있는 것처럼 살았는데 게다가 실연의 후폭풍까지 몰려와버린 것이다. 그땐 진짜 세상을 살 이유가 없었고, 공중에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오늘을 건너 내일을 간다는 것이 지독히도 아득했던 그때.


 아무도 오지 않는 동아리실을 여름내내 지켰다. 아침에 가서 물걸레질을 하고, 80년대 혁명을 목놓아 외쳐되던 책들이 즐비한 책장 사이사이의 퀴퀴한 냄새를 지운다. 그리고 종일 누군가를 기다린다. 물론 그 누군가는 오지 않는다. 어쩌다 취직준비에 바쁜 선배들이 잠시 담배 피러 다녀갔을뿐, 나 대신 앞으로 이 문학회의 십자가를  멜 후배들은 이미 자기인생을 찾아 떠났거나, 군대로 피신한 터였다. 노을빛이 창가를 건너 내 발밑을 적실때면 나는 하루종일 같은면을 펼쳐놓은 신문이며 책을 가방에 넣었다. 문을 잠그고 어둠이 깔린 학교를 나서면 갈 곳이 없었다. 어떤 날은 창문 옆으로 종일 비가 내렸고, 어떤 날은 매미소리로 작곡까지 할 정도였다. 창밖에 보이는 그들의 여름은 유쾌해보였고, 창안의 나는 새장속에 갖힌 새처럼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내 생애 가장 길고 긴 여름이었다.  


 








▲ 기형도, 입속의 검은 입


 그때 내 유일한 벗은 시집이었다. 대학 2학년때 화창한 어느 날 샀던 기형도 시집. 그러나 그의 우울은 화창한 내 젊은날에는 스며들지 못했고, 아무와도 나눌 수 없는 고독한 시간속에서 빠르게 침투해왔다. 그의 시집을 읽으면 방황하는 내 영혼이 차분히 자리를 잡는 듯 했다. 기형도가 본 풍경은 내가 만났던 회색의 세상과 일치했다.


 그러고 나니 무언가를 쓰고 싶어졌다. 빗속을 달리는 자동차 타이어소리마저 남기고 싶어졌다. 낙인과 별개로 나는 내 목소리가 듣고 싶어졌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세상에 대한 의문이 나면 나는 대로. 내가 일기장에서 펼쳐낸 세상속에는 '글을 쓰네 못쓰네 하는 낙인'따위는 없었다. 어차피 나중에 다시 내가 독자가 되어 읽어줄 사연들이었으니...그때 나를 글쓰기로 몰아간 것은 아마도 착 달라붙은 우울한 정서였을 것이다. 문학은 가끔 패배자의 기록이기도 하니까.


 그 이후로 나는 선배들이 아무렇게 않게 내뱉은 낙인의 사슬에서 벗어났다.


 그러면서도 종종 궁금해했다.


 왜 인간들은 낙인 찍기를 좋아할까.


 


7.


 글.


 지상에서 부유하는 생각이 아득한 침묵의 시간을 통과하면, 활자가 되어 생명력을 얻는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나의 눈으로 들어와 나의 영혼을 편안케 한다. 어떤 의미에서 타인과의 소통 못지 않게 강한 치유력을 가진 것이 글의 힘이다.


 


 모든 글은 자기자신이라는 단 한사람의 독자를 가진 셈이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를 갖는다. 거창하게 문학따위를 들먹거리지 않아도.


 


 새벽은 여전히 깊은 침묵속에서 말이 없고, 세상은 잠들었다. 내 글은 나의 성난 영혼을 잠들게 한다. 비로소 이제 나는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듯 하다.


 


 


                                                           - 블로그가 재개되길 기다리던 2005년 어느 가을날에..




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길에서 만난 연인들 l 2005/09/24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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