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일요일인 오늘 오랫만에 컴퓨터 대신 책을 보려, 작은방 침대에 누워 뭉개고 있으니까, 채현이는 끊임없이 알짱거렸다. 약간 스산해진 날씨 탓에 얇은 여름이불을 덮고 있으려니 채현이가 와서 확 이불을 치워버리고, 대신 자기가 들고온 방석을 덮어준다. 방석은 사실 덮어주나 마나 한거지만, 나는


 "고마워요"


 이러고 박수를 쳐준다.


 그럼 채현이는 씨익 웃고, 다시 제 할일 하러 간다.


 (채현이가 제 할일을 하러 간다는 것은 아직 배가 고프지 않거나, 졸리지 않다는 뜻이다^^)


 


  나는 읽던 책을 덮고(사실 집중이 안된다 ㅜ.ㅜ), 채현이가 하는 것을 바라본다. 내 눈이 비디오 카메라가 되는 것이다. 만 두살짜리 아이의 걸음걸이며, 손짓하며, 얼굴 표정들.....어떻게 보면 그렇고 그런 평범한 아이의 모습인데도, 전혀 질리지가 않다. 그 이유는 딱 하나 예측이 안되기 때문이다.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를 지 모르고, 어디로 관심사가 360도 바뀔지 모르는 아이라서, 그냥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재미있다. 게다가 순수한 자연 그대로의 연기가 아닌가.


 


  난 그런 채현이의 모습을 비디오가 아닌 내가 그린 그림으로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토토로의 메이처럼 영원히 애니메이션 속에서 살아서 아이가 갖고 있는 어떤 원시성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최근 갖게된 소망이자 꿈이고, 그걸 실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2.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와 함께 뒹굴다보니, 나는 문득 인생이라는 산의 정상에 있다는 것을 느낀다.(난 사실 아이가 태어나기를 간절히 바랬던 사람이 아니라서 더욱 그렇기도 하다.) 


 인생의 정점이란게 꼭 한 40대가 되어서 세상을 호령할만한 지위를 얻거나, 무언가 자신의 뜻한것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는 경제력을 가졌을 때라고도 볼 필요는 없다. 물론 세상을 제 뜻대로 진격해갈 수 있는 경제력이나 지위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조건일 뿐이다. 


 나에게 '정상'이라는 의미는 인생이라는 세편의 드라마를 볼 수 있게해주는 지점이라는데 그 의미가 있다.


 내가 아이였고, 부모의 그늘에 있었을때 보았던 서른 이후의 부모의 인생이 그 첫번째 드라마고, 내가 길고 긴 10대를 거쳐 20대를 겪으면서 본인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서 세상을 맛보면서 만들어가는 드라마가 그 두번째라면, 아이가 태어나면서 내가 볼 수 없었던 탄생의 비밀이나, 유아시절은 그 세번째 드라마가 될 것이다.


 


 부모,나,아이가 만들어가는 세편의 드라마는 서로 보완적이며, 서로를 자극한다.  


 


 어떤이에게는 이미 한편의 드라마가 끝나버렸고, 또 어떤이는 아직 또 다른 드라마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이는 자신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고 전해 색채가 다른 환상이 가득찬 드라마만을 보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3.


  이성부 시인은 그의 시에서 '아버지는 늘 찬바람을 몰고 집에 오신다'고 했는데, 울 아버지도 늘 그랬다. 늘 집에 오시는 길에 '센베이'나 '과일-주로 귤'등을 사오셨고, 집에 오시면 하룻동안 거칠게 자라버린 까칠한 수염으로 우리 얼굴을 부비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가죽자켓에는 겨울의 찬바람이 묻어있었다. 그것은 또한 세상의 찬바람이기도 했다. 


  물론 우리는 아버지가 사들고 오신 '과자'는 대단히(?) 환영을 했으나, 아버지의 수염비비기(?)는 공포의 대상이어서 도망다니기 바빴으니 늘 사냥꾼에 잡히는 토끼처럼 여지없이 잡히곤 했다. (그래서 토끼같은 자식이라는 표현은 틀린게 아니다.)


 


 문제는 늘 엄청난(?) 성적표를 받아오는 우리들에게 매를 주시고 훈계를 하실 때 발생한다. 아버지는 늘 우리를 혼내시고는 늘 하시던 레퍼토리 제 1장은 '공부를 못하면 사람대접을 못받는다'였다. 


  '말죽거리 잔혹사'에서 권상우 아버지가 권상우에게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잉여인간'이라며 윽박지르는 모습이나, 마지막에 엄청난 폭력전을 벌인 권상우를 별말없이 경찰서에서 데리고 나올때 '근데 이소룡은 대학 나왔냐'는 소박한(?) 질문은그런 의미에서 집단의 기억이 담긴 명언이다.


 그것은 6,70년대 아이들을 키우고 지독한 생존의 늪을 헤쳐오신 세대,대학 나오지 못한 부모세대들에게 재수없는 세상이 퍼부었던 멸시이자, 순진하기만 했던 그들에게 뼈속까지 사무친 자기혐오의 뿌리이기도 했다. 물론 나의 아버지도 대학과는 인연이 없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이야기 하나로 밤 12시까지 훈계를 하셨다.     


 (동생은 졸음을 겨우 참다가, 시계를 보다가 아버지한테 얻어터졌다. ㅜ.ㅜ)  


 


  아버지가 설파하진 인생의 진리 제2장은 '형제지간에도 서로가 다 잘 살아야 나중에 커서도 서로 만날 수 있다'였다.  아버지가 드신 예는 여지없이 성공한 '판사'이야기였고, 그의 형인가 동생은 잘 못살아서 서로 왕래가 없다는 잔인한 현실까지 덧붙여 말씀해 주셨다.


 아이들에게 이 내용은 늘 반복되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였으나 사실 나는 당시 우리가 받아온 엄청난 성적표가 그렇게 비관적인 미래와 왜 연결이 되어야 하는지 몰랐다. 단순하기만 한 나에게 아버지의 인생론은 너무나 잿빛이었고,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사회속에 살아남는다는 진실하나만 덩그러니 던져졌던 것이다.


 


 사실 그때 아버지가 설파하신 인생론은 내가 가야할 미래라기 보다, 아버지가 당대에 겪고 있던 삭막한 세상의 반영이었다. 즉 아버지의 훈계는 우리형제가 앞으로 헤쳐나갈 과제이기도 했지만, 당장 아버지가 해결하고 싶었던 최우선의 과제였을 것이다.


 사회는 이렇게 부모를 통해서 당대의 지배이데올로기를 밥상머리서부터, 가정교육이라는 탈을 쓰고 전달한다.



  내가 성큼성큼 자라면서 30대였던 아버지는 40대로, 다시 50대로...이제 60에 드셨다. 예전처럼 우리를 호령하던 사나이로서 계시기 보다, 어쩌면 친구처럼 나와 같이 술을 한잔 나눌 수 있는 분으로 바뀌셨다. 이제 포효하는 쪽은 아버지가 아니라 내쪽이고, 세상을 가르치려 드는 쪽도 아버지가 아니라 나다. 아버지는 이미 주연에서 은퇴한 배우가 되었고, '은퇴 이후의 삶'이라는 영화를 찍고 계신 것이다.


 외국에 있다보니, 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날, 아버지를 모시고 선술집에서 술 한잔 대접할 수 없다는게 가장 아쉽다.


 


4.


 두번째 드라마를 찍고 있는 나는, 아직 그것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나이가 아니므로 건너 뛰기로 하자. 단 한가지, 역시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자신이 주연이 되어서 느끼는 실감은 몇만배 이상이라는 것. 연애가 그렇고, 공부가 그렇고, 고난의 극복이 그렇고, 인생경영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5.


 마지막 드라마, '아이편'.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아직 눈도 제대로 못뜨던 '두더지'같은 상태였을때, 그리고 오물오물 엄마젖을 찾아 꼬물거릴때, 나는 몇십년간 숨겨진 내 필름을 본 듯 했다.


 아이를 보며, 나의 부모가 나를 낳았을때, 나를 바라보던 그 필름을 찾아낸듯 나는 기뻤다. 아....내가 이렇게 태어났고, 이렇게 자랐구나.


 아이가 한밤중에 울어될때면(거의 군대 불침번과 비슷하다. 어두침침하고 잠 덜깬 상태에서 무언가를 해야하는 일이므로), 내가 유아였을때도 어머니에게 이런 메세지를 보냈을 것이고, 아이가 기어다니다가 걸어다닐때 경이로움을 느끼던 나는, 문득 어머니가 삼십 초반이었을때 나를 보고 떠올린 미소를 그릴 수 있다.


 


 아이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유아기와 소년기를, 아직 자아를 갖지 못했던 나의 숨겨진 과거를 재현하는 듯 하다. 그것도 매일 매일. 이런 생각을 하며 아이와 지내는 일은 그런 까닭에 유쾌한 일이고, 신나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드라마가 숨겨져 있었다니. 그래서 아이가 문제를 일으킬수록 그것은 귀찮을 일이기도 하지만, 또한 삼형제를 키우시던 어머니의 경험과 마음을 헤아리게 만들기도 한다.


 


 아이는 그래서 나의 '오래된 과거이자 미래'이기도 한 것이다.


 


6.


  인생에 정상에 선 내가 해야할 일은 이제 종반을 향해 가고 계시는 아버지의 드라마가 '마지막 황혼'의 빛깔을 잘 담을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일이기도 하고, 아이가 자신의 인생이라는 드라마를 잘 꾸려갈 수 있도록 무대로 만들어 주기도 해야 한다. 어쩌면 배우라기 보다 후원자이자 제작자여야 하는 위치다.


 


  어쩌면 그래서 진짜 주연배우였던 시절은 스무살부터 결혼하기 전까지였다는 생각도 든다. 후원도 제작지원도 필요없이 맘껏 말처럼 뛰어다니기만 할 수 있던 시절....


  인생의 진실이 화려한 경력보다, 사소한 경험들의 축적과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고 했을때, 나는 점점 무거워지는 현재의 위치를 힘겨워하고 버겁게 느끼기 보다, 기분좋게 즐기며하고 아이에게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려한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우리의 배움은 언제 어디서라도, 어떤 위치에 있더라도 열려있다. 군자의 길처럼 배우고자만 한다면 말이다.


 


  어차피 이래도 한세상, 저래도 한세상이 아니던가. ㅎㅎㅎ 


 


 근데 채현양, 이제 그만 좀 어지럽히시죠. 어제는 아예 벽에다 신나게 낙서까지 했더만. 채현이는 이제 진짜로 드라마를 넘어 아예 영화(?)를 찍고 있고, 집안이 점점 더 영화 셋트가 되어간다 ㅜ.ㅜ. 


                                                                                     (04.8.29 ㄷㅏㅇㄱ ㅡㄴㅣ ㅆ ㅡ 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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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아이,나의 흑백필름 l 2005/07/11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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