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그니의 일본표류기


1.

 요즘 이러저러한 그림이나 사진을 즐겨 보다보니, 문득 '빛과 그림자'에 대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도 그렇지만, 그림도 빛과 그림자를 통해 사물의 형태를 드러낸다. 그렇다면 색깔은? 그건 감정의 표현이라고 해두자. 흑백사진이 칼라와 다르게 차분하게, 들떴던 열정같은 것이 사라진 차분한 느낌이 드는 이유가 거기에 있으니까....


 


 특히 근래 느끼는 것이지만, 그림자, 즉 어두운 곳이 강렬할수록 밝은 부분이 더욱 눈에 띤다는 사실이다. 그림자부분이 어둡지 않을수록 밝은 부분도 그래서 잘 눈에 안 띤다. 예전에 그림의 포인트는 구도나 색상 이런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요즘들어서는 그림자의 깊이에 더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림자 하나 없이 밝기만 한 사람이 왠지 위태위태해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저사람한테 온통 환하게 비추는 빛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지금껏 갖지 않았던 그림자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까 하는....


 


 


2.


 중학교때나 미술을 배우면 '명암'은 기본중의 기본으로 배운다. 그땐 뭐 깊이있게 생각하고 그렸다기 보다 허겁지겁 허기를 때우듯 그림을 그려댔으니, 골똘히 생각하는 것도 없었다. 스무살 넘어 수채화를 다시 그렸을때 나는 그림자부분을 두려워했다. 그 이유는 한번 검게 칠해버린 부분은 두번다시 복원할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엹게 그리고 흐리게 채색을 했다. 그러다 보니 밍숭밍숭한 그림이 되어버렸고, 그 당시에도 나는 잘 깨닫지 못했다. 왜 이 그림엔 깊이가 없을까....


 


  그림을 씨름하듯 그릴게 아니라 약간 관조하듯 즐기듯 해봐도, 알 수 있었을 텐데. 아마 당시 나는 그럴 여력조차 없었음에 분명하다. 그래서  아주 평범한 진리도 때때로 영원히 깨닫지 못하는 부분으로 남기도 한다.


 일례로 채색을 할때도 같은 색깔이라도 주변의 색깔에 따라 느낌이 조금씩 다르고, 또 동일한 깊이의 그림자도 좀 더 어두운 곳과 덜 어두운곳의 세심한 배려하지 않으면 밋밋한 그림이되고 마는데, 나는 그것을 배울때 끝내 이해를 하지 못했다.(아니면 대충 안다고 오해했을 듯) 그런 것은 재능보다 통찰의 영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재능의 부족으로 치부하고 파고들기 보다는 외면해버렸다. 그만큼 나는 그림과 싸우고 있었다. 사실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사람들은 이것이 재능의 문제인지, 노력의 문제인지 헤깔릴때가 너무 많다. 


 


 


3.


 주말이 되면 주중에 밀린 빨래를 하느라 아침부터 세탁기 소리가 한창이다. 어느 가정에나 있는 평범한 풍경이다. 오후가 되면 빨래를 갠다. 빨래의 절반이상은 채현이 빨래다. 아이의 빨래는 정말 끝이 없다. 아이가 마루에서 '뿡뿡이'나 보고 있을때나, 아니면 곤히 잠들어 있을때 빨래를 개다보면 방한구석이 아이의 개켜진 빨래도 가득찬다. 노오란 타타미방 구석이 물감을 먹은 것처럼 원색의 옷들로 채워진다.


 아이의 옷은 코코아 같은것이라도 한번 흘려버리면 세탁기에 담을 수 밖에 없다. 무슨 대책이 없다. 그냥 빨아야 한다. 자칫 진한색을 써서 잘못 칠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망가지는 수채화처럼. 처음부터 주의를 갖고 지켜보는 수 밖에 없다.


 


 채현이 빨래를 촘촘히 널거나 빨래를 걷고, 개다보면 채현이는 부모가 이렇게 자신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든든히 받아주고 있다는 것을 알까 생각하게 된다. 채현이는 내가 맨날 깨물고, 괴롭혀서(?) 나를 싫어하지만^^. 도종환 시인의 말대로 가지가 아름다운 이유는 가지를 넉넉히 받쳐주는 여백때문이듯, 아이가 아름다운 이유는 아이를 받쳐주는 부모의 넉넉한 사랑때문일 것이다. 


 


 


4.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거의 부모님과 함께 어딜 다니거나 하지 않았다. 번데기를 벗어난 나비처럼, 그만큼 바쁠때이기도 했고, 해야할일도 많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산뜻한 스무살의 빛깔과 가족이라는, 익숙한 무채색은 절대 어울릴 수 없다고 믿었다. 내 스무살의 밝은 빛깔 옆에는 화사한 꽃같은 여자나 적당한 명암을 줄 수 있는 철학책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런 내 하얀 캔버스에 부모님들의 오래된 생활냄새가 배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끔 당당하게, 혹은 도도하게, 자신의 성취를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야기할때 아버지는 가끔 이렇게 한마디 하셨다.


 


 '이 애가 무슨 저 혼자 큰 줄 아나'


 '그럼요. 저 혼자 컸지요' (내 대답이었다 ㅡ.ㅡ)


 


 아마 내가 나 혼자 크지 않았다는 것을 아버지가 하루종일 나를 붙잡고 말씀해주셨어도 이해해지 못했을것이다. 적어도 그때는...... 부모님 따라 어쩌다 남한산성의 꽃놀이를 갔을때도, 출출한 시장기를 채우러 근처 갈비집에 들렀을때도 나는 나 혼자만의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도 늘 부모님은 배경이었을 뿐이었다.


 


 


5.


 부모님이 그렇게 내 그림자를, 내가 태어날때부터 집을 떠날때까지 무수히 많은 날들을 받아주고 다듬어주셨는 줄 몰랐다. 채현이의 옷을 하나 하나 개면서 나는 딸에 대한 애정보다 부모님의 무수한 손길을 느낀다. 나는 비록 기억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는 있게 된 것이다.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를 가끔 하시던 말씀을....어머니가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짊어져야 했던 짐들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리고 그것은 직접 마주앉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 엇갈리는 시간속에서 자연스럽게 만난다는 것을....


 그러므로 나의 화려한 빛깔은 전적으로 부모님이 빛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정확하게 칠해준 그림자덕택이라 할 것이다. 


 


 생이 던져주는 강렬한 색채나 밝은 햇살만 알고 있는 내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림자가 주는 은은함을, 그 깊이가 주는 향기를 알아가는 것이 때론 어린이마냥 즐겁다. 


 


 다음 주말저녁엔 부모님께 꼭 전화라도 해야겠다.


 채현이 빨래가 너무 많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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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당그니
인생의 갈림길에서/아이,나의 흑백필름 l 2005/06/2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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